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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26. 2019

유랑지구(The Wandering Earth.2019)

중국 뽕에 취해 부처가 되어버린 사연


중국의 역대 흥행 기록을 깨고 있다는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유랑지구>를 봤습니다. 어쩌다 보니 중국 영화의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던 <특수부대 전랑 2> https://brunch.co.kr/@josetmojito/23 와 <유랑지구> 두 영화를 모두 봤네요. <유랑지구>의 '중국 뽕'이 너무 심해 극장 주변만 가도 취할 정도라 하니 영화가 어떨지는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짐작이 됐습니다. 이미 <특수부대 전랑 2>에서 학습(!)을 어느 정도 했거든요.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유랑지구>와 이전 <특수부대 전랑 2> 두 영화를 굳이 찾아본 이유는 지금 중국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큽니다. 그리고 '중국 뽕'을 비판하고 싶어도 저의 생각과 기준으로 비판하고 싶지 유령 같은 대중심리에 휩쓸려 보지도 않은 영화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나름의 고집이 있기도 합니다.


항상 영화 리뷰를 쓸 때 이미 영화를 본 관객을 대상으로 쓴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굳이 줄거리를 포함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못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 간단히 줄거리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알아도 굳이 재미가 반감되거나 그러진 않지만, 그래도 <유랑지구>를 좀 더 재밌게 즐기고 싶은 분은 영화를 보고 오시길.

#하지만그런다고 #재미가더늘어날까?






그리 멀지 않은 미래, 태양이 팽창하면서 지구의 멸망이 다가옵니다. 인류는 더 이상 지구 표면에서 살 수 없어 지하에 도시를 건설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위기를 타개할 거대하고 근본적인 프로젝트를 세우니 이름하야 '유랑지구 프로젝트'. 지금까지 지구 멸망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살 길을 모색 코저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하거나 '방주'를 만들어 지구가 안정될 때까지 '존버'하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역시 대륙의 스케일은 엄청납니다. '유랑지구 프로젝트', 그것은 아래 사진과 같이 지구의 한쪽 면에 거대한 로켓(!) 같은 추진체를 각 국가 별로 엄청나게 건설하야 그 추진체를 이용해 태양 궤도에서 지구를 이탈시켜(!) 태양계 외의 또 다른 골디락스를 찾아 헤맨다는 것....





여차여차하는 와중에 추진체를 통해 날아가는(!) 지구는 목성의 중력권 안으로 진입하게 되고 거대한 목성의 중력에 이끌려 먼지가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구는 중국인들의 천재적인 지략과 숭고한 노력으로 인하야 위기에서 탈출하는데, 대륙의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이 탈출 방법에서도 우주까지 승천하니 그것은 바로 90퍼센트가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체 행성 목성을 폭발(!!)시켜 그 충격파를 반작용 삼아 중력권에서 벗어난다는 것... 




목성은 지구 크기의 11배, 태양계 행성을 다 합쳐 놓은 질량의 2/3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 무시하게 거대한 행성. 이런 행성의 90%를 차지하는 수소를 폭발시킨다면 아마 그 폭발력은 지구를 튕겨내는 정도가 아니라 엔간한 태양계 행성들을 모두 먼지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데.. 하긴 이것저것 따지면 지구에 로켓을 달아 날아간다는 이 영화의 시작부터가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설정을 어디부터 욕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사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설정은 할리우드에도, 인도에도, 우리나라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니(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설정은 설정일 뿐', 대륙의 너른 아량으로 이해하고 오직 플롯과 내러티브만 간단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속도는 무제한 성능은 최대한'으로 아우토반 위를 '분노의 질주'하는 자동차 같습니다. 캐릭터나 관계 구축, 자질구레한 사건 등은 그저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전봇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속도무제한성능최대한' 자동차의 목적은 최대한 빨리 도착지에 도달하는 것. 관객이 캐릭터나 상황에 감정 이입할 여유도 없이 분노의 질주를 벌입니다. 이런데 이 질주가 어찌나 빠른지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지, 누가 어떻게 되는 건지 파악이 잘 안 되는 씬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갑자기 왜 이렇게 되는지, 저 인물들은 왜 저러고 있는지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바로바로 캐치해야지, 그런 거 다 설명해주는 건 대륙의 스케일이 아니라는 듯 장쾌하게 질주하는 이 영화. 그런데 또 누가 죽거나 하면 꼭 빠짐없이 장엄하고 느린 음악에 슬로 모션이 걸리며 눈물 흘리고 애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니, 감정이입은 둘째치고 저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슬픔과 애도가 작렬하니 "아니? 왜?" 싶습니다.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이 사람은 사실 이런 사람이었어" 하는 식으로 죽은 이의 여러 장면을 플래시 백으로 처리하는 성의를 보여주는데, 그럴거면 있을 때 잘하지 싶은 생각이 안 들 수 없습니다. 어쨌든 캐릭터 구축이 채 시작도 안 된 인물의 죽음과 플래시 백에 어느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누가 죽건 살건 미션 수행을 위한 중요한 차량의 바퀴가 빠져나가건 뒤집어지건 이야기는 차창밖의 전봇대처럼 휙휙 빠르게 진행되는데 말 문이 막히는 우주적 스케일의 사건들은 갈수록 점입가경. 영화의 2/3가 지나면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이야기를 따라가던 저 자신을 결국 놔버리고 우주를 유랑하는 지구와 물아일체 되어버리는 명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대륙인들이 어떤 기절초풍할 일을 벌여도 그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우주적 소란을 바라보는 저 자신을 느끼는 단계에 접어들죠.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저를 온화한 미소 짓는 '부처'로 만든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 스스로를 내려놓는 이런 '명상적 영화 체험'은 처음 느끼는 진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대륙 블록버스터가 주는 '진기한 경험'은 잘 만들어진 B급 영화가 안겨주는 골 때림의 미학, 그 카타르시스와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B급 영화, 예를 들면 제가 좋아하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레닛 테러>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여주인공이 의족 대신 기관총을 차고 좀비들을 쓸어버린다는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 황당함은 탄탄하게 다져있는 영화적 문법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플레닛 테러>가 안겨주는 황당한 하이라이트는 매우 짜릿한 카타르시스로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내게 B급 영화의 포털이 되어준 그 이름 <플레닛 테러>



<유랑지구>의 진기한 경험은 그렇다고 '못 만들어진 영화의 시민 케인'으로 칭송받는 <더 룸>이 주는 괴작의 카타르시스와도 또 다릅니다. <더 룸>은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엉뚱함이 있습니다. 감독의 진심인지 농담인지, 진지함인지 가벼움인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줄타기, 영화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는 엉뚱한 톤 앤 매너는 어느 순간 관객을 영화에 동화시키고,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요소들을 웃음으로 환원시키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유랑지구>는 일관성이 부재합니다. 많은 요소가 대단히 이질적입니다. 대부분 컷의 미장센은 정말 훌륭한데, 그 많은 컷과 컷의 연결이 대단히 부자연스럽습니다. 언뜻 봐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엄청난 고퀄 영상은 말도 안 되게 초라하고 빈약한 내러티브와 극명히 대비됩니다. <유랑지구>가 가진 유일한 일관성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이질성과 불균질성입니다. 결국 제가 느낀 '명상적 영화 체험'이란 이러한 <유랑지구>의 이질적이고 불균질한 충돌들, 영화 내내 일어나는 이 충돌들에 반응하고 소화하려 노력하다 결국 포기하고 항복을 해버린 것에서 오는 일종의 '해탈(!)'이었습니다.



못 만든 영화의 '시민 케인', 이미 전설이 된 그 이름 <더 룸>






어쩌면 중국의 이런 불균질한 블록버스터에는 현재 중국 사회가 투영된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 팽창은 사회주의라는 국가 운영 이념이 무색할 정도로 기형적인 배금주의를 낳았죠. 모든 인민의 평등을 주창하지만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에 고통받고 있기도 하고요. 한 꺼풀만 벗겨내면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모순으로 가득 찬 국가. 우리의 일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세계. <유랑지구>가 그런 느낌입니다. 빠른 기간 동안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상당히 괜찮은 영상을 뽑아낼 수준에 도달했지만 편집, 내러티브, 플롯 등 스토리텔링에서는 영화 내적인 완결성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매우 불균질한 영화.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알리타>에서 보듯 또 한 걸음 진보한 할리우드의 그래픽 수준이 중국보다 우위인 것은 당연하지만, 적어도 <유랑지구>는 중국의 특수효과와 그래픽이 상당 수준까지 올라왔음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현재까지 한국 영화의 그래픽 중 최고라 평가받는 <신과 함께> 보다 <유랑지구>가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보입니다(게다가 <신과 함께> 그래픽 작업의 상당 부분은 국외에서 진행됐다고 하죠).


중국이 계속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영화만 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 학습하고 노하우를 쌓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형편없는 국뽕 영화라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은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형편없는 이야기와 국뽕을 비난하지만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스케일은 우리가 도저히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지금 부족한 부분을 채워 정말 재미있고 멋진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그런 날은 분명히, 멀지 않은 시기에 올 것입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니니까요. 





국뽕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지난 <특수부대 전랑 2>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중국만큼의 자본과 시장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태극기를 휘날리며 지구를 구하는 영화를 안 만들겠습니까? 대한민국,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을 '주모'의 나라가 아닙니까. 


생각해보면 한국의 자본과 스태프와 배우가 만드는데 당연히 한국이 지구를 구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미국이 영화를 만들면 미국이, 나이지리아가 만들면 나이지리아가, 파키스탄이 만들면 파키스탄이 지구를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미국과 중국 영화에서 풍기는 강렬한 국뽕 향이 유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 노골적인 정도가 과한 중국의 뽕에는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들의 자본과 인력으로 만드는 영화에 '한국이 지구를 구하게 하라'거나 'UN이 구하게 하라'라고 요구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중국의 이러한 전 지구/우주적 상상력을 품지 못하고, 그것을 영화로 발현시키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검사 영화, 조폭 영화, 정치 영화만 자기 복제하는 한국의 상황이 그저 착잡할 뿐입니다. 중국과 한국 중 누가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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