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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r 02. 2019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절정에 오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진가를 확인할 시간



'나는 지금 진짜 영화다운 영화, 영화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 내내 몇 번이나 저의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이 생각은 '하!' 탄식을 내뱉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첫 쇼트, 자신의 침실에서 시녀의 도움을 받아 기다란 망토를 벗는 앤 여왕의 모습이 롱 샷으로 담긴 깊은 심도의 그 첫 쇼트! 근경에 놓인 침대, 중간에 놓인 인물들, 원경에 놓인 가구들이 만들어내는 영상의 깊이감, 그 피사체를 둘러싼 화려한 양식의 공간적 배경이 만들어내는 그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강렬한 영화적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화려한 조명을 치거나, 눈이 어지러운 그래픽이 쓰이거나, 짧은 컷이 연이어 이어지는 속도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로크 풍 음악과 함께 먼 거리에 놓인 카메라가 천천히 인물을 향해 다가가기만 하는데 이 영화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컷, 시무룩하기도 하고 뾰로통한 표정의 여왕(올리비아 콜맨), 그리고 다음 컷,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컷, 그 다음 컷, 그 다음 컷, 얄팍한 이쁨이 아닌 아름다움과 힘이 함께 느껴지는 깊이 있는 쇼트들..





창밖에서 쏟아지는 자연광만을 이용한 것처럼 보이는 절제된 조명(영화에서는 자연광처럼 보이지만 아마 건물 외부에서 촬영감독의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 조명을 치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머리부터 허리 잡는 미디엄 샷 이상으로 타이트하게 잡히는 쇼트에서는 반사판이 사용됐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궁전에는 LED나 형광등이 없었기에 이런 최대한 절제된 조명을 추구했겠죠), 메이크업이 되어있지 않은 배우들, 완벽한 연기, 카메라 앵글과 무브먼트, 컬러, 의상 등 모든 쇼트가 완벽해 보입니다. 이 영화,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엠마 스톤보다 그 옆에 보이는 아리 알렉사에 눈이 더 가면 이상한 건가요..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존 란티모스 연출작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다이나믹한 카메라 무브먼트입니다. 물론 <킬링 디어>에서 피사체를 무시하고 원경에 더 집중하는 부자연스러운 앵글이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인물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샷 등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미장센을 보여주긴 했지만(다분히 관객을 극에서 밀어내려는 의도가 담긴), <더 페이버릿>처럼 역동적인 카메라 무브먼트를 보인 적은 없습니다. 그의 영상은 정적이었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위플래시>나 <라라랜드>에서 볼 수 있었던 빠른 패닝샷(카메라를 좌우로 돌리는)이나 트래킹 샷(인물을 따라가는) 등이 자주 쓰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돌리를 이용해 카메라를 이동시키면서 패닝하는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기존 그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영상들. 그래서 살펴보니 이번 영화는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까지 그동안 줄곧 함께 작업을 해왔던 '티모오스 바카타키스' 촬영 감독이 아닌 '로비 라이언'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췄네요.


감히 말하건데 이 영화는 모든 쇼트가 아름답습니다. 영화를 플레이 시키고 눈을 감은 채 스톱! 해서 아무 씬이나 골라내도 아름답고 완벽합니다. 그만큼 멋진, 멋지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화적' 미장센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란티모스의 영화들은 그의 인장과도 같은 독특하고 낯선 세계를 보여줘 왔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같은데 어딘가 왜곡되고 뒤틀려 있는 세계, 완벽히 통제된 세계 안에서 인형들처럼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자유의지를 갖춘 것 같은 인물들, 그들이 빚어내는 초현실적인 세계. 그것을 무덤덤하게 스윽 관객에게 건네는 그만의 스타일. <더 페이버릿>에서도 그런 그의 세계는 이어집니다. 표정이 거세된 듯한 사람들, 하지만 또 한편 비현실적으로 과장되게 드러나는 감정들, 뜬금없는 토끼의 존재, 짙은 화장과 가발을 쓰고 나체로 웃으며 고위 관료들이 던지는 과일을 맞는 광대 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이런 독특한 미장센과 세계는 란티모스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그만의  블랙 코미디적 요소도 담겨 있습니다. 특히 앤 여왕이 바라보는 가운데 열리는 연회에서 마샴과 사라 제닝스 간의 밑도 끝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춤사위, 숲 속에서 애비게일(엠마 스톤)과 마샴(조 알윈)이 벌이던 과격한 잡기 놀이(!) 등의 유머코드는 영화 전반의 진지함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극의 분위기와 잘 어울어집니다. 오히려 간간히 등장하는 이런 유머가 극의 분위기를 더 묘하게 상승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이러한 이질적이고 뒤틀린 이미지들이 란티모스의 독특한 초현실적 세계를 구축하는 요소이기도합니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려 17명의 자식을 잃은 앤 여왕, 그렇기에 무너지기 쉬운 유약한 내면을 지닌 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 앤 여왕 옆에서 그녀의 애정결핍을 교묘히 이용해 섭정을 펼치지만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강한 여인 사라 제닝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오직 다시 출세의 사다리를 오를 기회만을 엿보는 욕망의 여인 애비게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 그들 캐릭터를 구축하고 인물 간 역학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있어 어느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습니다. 세세하게, 하지만 촘촘하게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이 영화의 각본은 짱짱하고 높은 밀도를 자랑합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이야기, 서사를 위해 존재합니다. 극장의 스크린에 보이는 그 모든 영상과 대사, 연기, 소리, 음악 등은 효과적인 스토리 텔링을 위해 봉사하는 내러티브 장치들입니다(물론 이에 반대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입이 떡 벌어지는 환상적인 그래픽이나 액션도 결국은 이야기 진행을 위한 사건으로서 기능할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상과 이야기를 분리합니다. 마치 몇몇 액션씬이나 새로 도입한 그래픽 기술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영화. 세상에는 그런 영화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 녹아 있지 않고 겉도는, 다시 말하면 내러티브로 기능하려하지 않고 홀로 독립하려고 하는 그런 미장센은 말하자면 뭔가 일은 벌어지지만 허무함만을 남기는 자위행위와 같습니다. 영화의 근본은 이야기와 캐릭터, 서사가 되어야 하고 미장센은 그것을 전달하는 언어로써 존재하는 영상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올리비아 콜맨의 귀여운 표정과 그녀를 보며 웃는 레이첼 와이즈



란티모스의 장점은 그가 창조하는 독특하고 이질적인 미장센, 엄청나게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특유의 '영상 언어'가 서사와 완벽히 합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의 전작 <킬링 디어>의 유려하지만 불편한 미장센, 끊임없이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그 미장센은 물기 하나 없이 말라비틀어진 건조 오징어 같은 <킬링 디어>의 내러티브로써 완벽히 기능합니다. <더 페이버릿>도 마찬가지입니다. 궁에서 세 인물이 벌이는 뒤틀린 욕망의 치정극은 란티모스 특유의 영상 스타일과 만나 이야기의 폭발력이 배가됩니다. 미장센은 그 하나하나 요소가 의미를 갖고 있어야지, 이쁘니까, 나 이런 것도 할 줄 아니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란티모스의 연출이 많은 작가주의 영화가 갖는 특유의 '예술성 뽐내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뽐내기가 아닌 진짜 '예술'이 되는 이유는 그가 연출하는 영상이 미장센의 본질인 영상 언어로서 내러티브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촬영감독 로비 라이언 형님



제가 조금 오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페이버릿> 중간중간 등장하는 기괴한 미장센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왜 여기서 등장하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피사체, 인물, 그 불온한 쇼트의 출현은 극의 톤 앤 매너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샤이닝> 속 갑자기 홍수처럼 쏟아지는 붉은 피,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토끼 탈을 쓴 사람 등은 없어도 극 전개에 큰 지장을 주지 않지만 그 몇몇 쇼트가 영화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더 페이버릿>에서도 귀족이 던지는 과일을 웃으며 나체로 받는 광대나 토끼의 등장 등 여러 쇼트는 <더 페이버릿>의 초현실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상당히 공헌합니다.








지난번 2019 오스카 시상식 뒷북 https://brunch.co.kr/@josetmojito/68 에서 토니 콜렛이 여우주연상에 받아야 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더 페이버릿>의 올리비아 콜맨. 충분히 여우주연상 받을 만합니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순간은 연회에서 마샴과 사라 제닝스가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보는 앤 여왕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던 쇼트라고 생각합니다. 40초가 조금 안 되는 시간 이어지는 앤 여왕의 클로즈업. 그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그녀 안에서 교차되는 다양한 감정, 휴, 그 압도적인 연기란.. <유전> 속 토니 콜렛의 연기가 외부로 폭발하는 격렬한 감정이었다면, <더 페이버릿>의 올리비아 콜맨이 그 쇼트에서 보여준 연기는 완벽히 밀폐된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이었습니다. 





지난 오스카 뒷북의 마지막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만약 <로마>가 이번 오스카에서 어떻게 해서든 수상작을 내려 안간힘을 쓴 넷플릭스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번 오스카의 감독, 촬영상이 <로마>에게 돌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더 페이버릿>을 보고 나니 더 짙어집니다. 모르겠습니다, <로마>를 그리 좋지 않게 본 제 개인적 취향의 반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번에 <더 페이버릿>에서 보여준 란티모스의 연출이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정말, 한 발 양보해 감독상은 쿠아론에게 간다 쳐도, 촬영 부문만큼은 <더 페이버릿>에게 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의 생명력을 잠식해가는 지금, 오직 카메라 만으로 이런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 란티모스 감독과 로비 라이언 촬영 감독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보냅니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봤다면 와 정말 숨이 막혔을 것 같습니다. 


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또 해냈습니다. <더 페이버릿>가 끝나고 멍하니 있다가 <더 랍스터>, <킬링 디어>에 이어 지금 이 영화를 빚어낸 그리스 출신의 낯선 이 감독은 현재 동시대에 가장 날카로운 에지를 보여주는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페이버릿> 꼭 보세요. '영화'란 이런 겁니다. 이렇게 멋지게 인간의 내면을 파헤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멋진 겁니다.




그리고, 보너스.









이 포스터 속 세 인물의 표정이 영화의 모든 걸 대변하고 있네요.   A Wicked Delight이라 표현한 타임스의 표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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