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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00m 거리의 아름다움(4)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하)

by 조쉬코쉬

https://brunch.co.kr/@joshcosh/9



그렇게 얼마 전부터 장미가 피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깐, 처음보다 더욱 붉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눈에 크게 띄었죠. 어쩌다 보니 ‘뭐가 저렇게 붉어’하며 멍하니 쳐다보게 됐는데, 그 순간 이쁘다 어쩌다 이런 단편적인 느낌보다는(이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신기하게도 ‘신비롭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느낌은 그다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던 그 장미가 뭐 특별했냐,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몇십 년 동안 매년- 봐왔던 장미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있을만한 그런 흔한 꽃 말입니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나는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꽃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비로소 꽃의 아름다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동안에도 꽃이 이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꽃의 색감이나 활짝 핀 모습이 나의 일상에서 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꽃을 볼 일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생경한 모습에 신기했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일단 나는 꽃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꽃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거죠. 물론 누군가 ‘당신이 그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 꼭 그런 건 아닙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래서 ‘내 나름대로’라는 도망갈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이제까지 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에게 꽃은 그냥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들 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 벌써 3월이 끝나가는 건가, 아직 할 게 너무 많은데 기한 안에 다 끝낼 수 있을까’, 장미가 피면, ‘아, 또 여름이구나, 저건 되게 붉네 더워 보이게’, 코스모스가 피면, 갑자기 ‘코쓱머쓱!’하며 검지로 코 밑을 비비는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다가, 벌써 한 해가 마무리 되어 간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에게 꽃은 그냥 이런 신호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꽃은 조금 '연약한 존재‘라는 인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꽃이란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 필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 금방 시들어 버리는 존재이자, 어차피 시들어 버릴 존재라는 인상 말입니다.


이렇게 나는 꽃에 대해 관심을 거의 가져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인상은 ‘그저 연약한 존재’라는 것쯤이었죠.


그러나 그날은 달랐습니다. 이상하게도 꽃으로부터 어떤 ‘기개(氣槪)’를 엿봤다고 해야 할까요. 꽤나 강인해 보였고, 멋져 보였습니다. 물론 그날 내가 본 꽃이 특별히 기개가 넘쳤다거나 아주 질겨보여서 강해 보였던 탓은 아닐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달라졌던 건 그 순간 ‘내가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었겠죠.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꽃은 짧게는 며칠, 길어도 한 달 정도 활짝 피우고는 조금씩 시들다가 결국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다소 ‘볼 품 없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짧은 순간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고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그 순간에 느낀 바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있습니다. 그게 짧든 길든, 그게 본인의 전성기라는 것을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비록 그것이 찰나의 순간이었든 꽤나 지속했든 말이죠.


‘전성기’라고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운동선수들입니다. 요즘처럼 100세를 사네 마네 하는 세상에서 프로 운동선수들의 선수로서의 수명은 여전히 10~15년, 정말 길어야 20년일 겁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부상이나 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선수 생활을 은퇴한 경우도 많겠지만.


그 선수들의 전성기는 보통 2~3년 이내로 짧은데, 그중 ‘눈이 부실 정도’로 기량이 만개하는 ‘최전성기(Prime)’는 한 시즌 정도, 어쩌면 선수 생활 통틀어 어떤 한 경기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과연 모든 운동선수들이 최전성기를 누릴까, 아마도 쉽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질문은 오히려 ‘최전성기를 누려 본 선수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고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일단 은퇴를 고려해야 할 정도의 큰 부상을 당한다거나, 극심한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든가, 본의 아닌 구설수에 휘말린다거나, 주변에 나쁜 사람들이 꼬이는 불운(Misfortune)들이 없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운 좋게 그런 일들을 모두 잘 넘겼다 해도, 재능과 잠재력이 빛을 발하려면 무엇보다 선수 본인의 부단한 노력과 끈기, 좌절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죠.


그러나 어쩌면 이것마저도 최전성기를 누리기 위한 ‘입장권’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를 테면, ‘네, 일단 내 나름대로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만, 역시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다음은 하늘에 맡겨야죠!’하며 씨익 웃어 보이는 그런 것 말이죠.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이게 내가 꽃이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에 스쳤던 생각들입니다.


꽃은 한 해의 대부분을 기다립니다. 살갗을 찌르는 듯한 강한 햇볕도 견디고,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은 긴 장마도 견디고, 살이 아릴 정도의 차가운 겨울마저도 견딥니다. 그렇게 자기가 꽃피울 그 한순간을 위해 한 해의 대부분을 인내하며 그저 기다리고 또 준비합니다. 꽃은 자신의 최전성기가 그토록 짧다는 걸 알까요, 아마 크게 상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나는, 꽃이 견딘 인고의 시간이 아니라 금세 시들어 버리는 순간을, 찬란한 순간을 목표로 순수한 열정을 뽐내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생명을 다하고 떨어져 구둣발에 짓이겨진 모습만을 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생기는 중요한 순간이었거든요. 나는 이런 것들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역시 돈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고 살기에는 이 세상이 감추고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흔한 꽃조차 감동을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과연 내가 알지 못한 존재의 의미들이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다양하게 있을까요.


나는 스스로 ‘이 세상에서 그토록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존재가 과연 얼마나 될지’ 생각을 해봅니다. 딱히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비로소 내 안에서 꽃이 ‘그저 연약한 존재’에서 ‘순수한 열정을 가진 강인한 존재’로 거듭난 순간이었습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고 강백호는 최강이라 불리는 산왕공고와의 경기 도중 심각한 등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이었죠. 강백호는 농구를 시작한 지 넉 달 밖에 안된 고교선수일 뿐이었습니다.


농구는 북산고 주장 채치수의 여동생인 소연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시작했을 뿐입니다. 순수한 동기라고는 할 수 없죠. 운동능력 하나만큼은 손꼽을 정도로 타고난 것 같습니다만, 농구는 엄연히 룰이 있는 운동입니다. 경기룰도 모르고 덤비는 강백호는 누가 보기에도 ‘초짜’ 일뿐이죠. 그 초짜는 농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자신을 천재니, 최강병기니 칭하며 자신감이 넘칩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정말 끝까지 그럽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자화자찬에 동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러나 가히 전국 최강이라 불리는 산왕공고입니다. 점수차도 어느새 20점이 넘게 벌어졌지만, 그 초짜는 단 한순간도 승리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놀라운 활약을 펼칩니다. 그 활약으로 20점 차 이상 벌어진 점수차를 10점 차로 줄여가던 중요한 순간에 부상을 당한 것이죠. 그렇게 강백호는 쓰러지며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교체됩니다.


그때 남은 경기시간 3분 남짓.


'이대로 끝인 건가, 더 이상 나는 농구를 할 수 없게 되는 걸까'라는 강백호의 독백에는 더 이상 소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동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농구가 좋아졌고 '지금'은 그저 농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농구와 북산의 승리를 향한 순수한 열망(熱望), 그뿐입니다.


한편, 북산고의 안 감독은 정말 잘해주었다며, 사실 강백호의 부상을 진즉 눈치채고 있었으나 순간순간 성장하는 강백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교체하지 않았다. 하마터면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 뻔했다며 강백호를 다독입니다. 그때 강백호가 말합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대부분 몰랐을 겁니다. 그저 고교 농구경기일 뿐이고, 흔한 초짜의 반짝 활약일 수도 있습니다. 초짜는 자신의 꽃이 그 순간에 잠시 피고 질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그 초짜의 순수한 열정이 비로소 꽃 피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잠깐 피고 영원히 시드는 것이 꽃이라지만,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게 꽃이라지만,

이 세상 어느 존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불태울 수 있을지.


꽃은 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 어둠이 언제쯤이면 끝이 날지 막막할 수도,

때로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글을 보는 모두가 나름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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