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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방

생애 첫 산문 초고를 다시 읽어 보던 중에...

by 조쉬코쉬

내 행복은 어떤 모습일지, 진정한 그 모습을 찾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 10개월 정도 지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깐, 그건 6개월 정도 지났다.


글쓰기는 내 과거의 모든 시도가 그러하듯 재능과 능력 같은 분수나 과거 경험 같은 익숙함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 그 시도는 마치 이제 때가 됐다는 듯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동안 적잖이 가득 차 있던 어떤 것들이 몸 밖으로 삐져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내게는 앞으로 쓰고 싶은 몇 가지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앞서 나 자신에 대해 깊이 탐구해 보는 글부터 쓰는 것이 일종의 도리에 맞는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점은 단지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세상의 불완전하고 답답한 규칙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듯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탐구하려는 자가 처한 심정과 환경은 아마도 이미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환경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불행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표현의 방식을 떠나 실제로도 그렇지 않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이든 행복이든 본질을 찾는 자에게 적합한 감정과 환경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때마침 그런 생각이 들만한 어떤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뿐이었으나 그것은 비로소 내게도 내면 속 고독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생긴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에 잠긴 고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히기 마련이므로 나 역시 지난 몇 개월 간 그래왔으리라 생각된다.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히는 그 상황에서는 나의 깊은 내면부터 감각이 닿지 않는 세계까지 모든 현상을 깊게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의 종결 단계라기보다는 이제 막 시작된 탐색 단계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탐색 단계였음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산문을 정리할 목적으로 다시 읽어보는 중에 깨닫게 되었으니 정말 최근의 일이라 할만하다.


자신에 대해 탐구할 목적으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보통 탐색 단계로 시작해 정리 단계로 나아가 종결 단계로 결론을 내린 후에 쓰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에 내 삶에 어떤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웠음은 지금 돌이켜 본다 해도 당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그 일반적인 순서를 따르지 못했다는 점도 깨닫는다.


문제를 인식한다는 것은 큰 측면에서 회피와 직면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인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그런 상황에서 회피함으로써 문제를 종결시키곤 한다. 그 행위가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일견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정할 수만은 없다.


내 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 파악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그저 덮어두다 보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도 많으며, 우연한 행운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해결해 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철학자가 아니며, 당장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기도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때마침 그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이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마냥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최근에 깨닫게 됐다.


- 생애 첫 산문 초고를 다시 읽어 보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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