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목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두운 속삭임

by 김성현

후회와 함께 떠난 과거 여행이 나를 휩쓸고 가고 에너지가 바닥난 뒤에는 고요만 남았다. 내가 나 자신을 가둔 감옥의 창살은 더 촘촘해졌고, 그 공간 속 어둠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공간 속 무기력하게 내 육체만 존재했다. 그저 거기 있었다 간신히 숨만 쉬면서.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때 그 고요함 속에서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잘 봐. 네 삶이 어떻게 됐는지."

"뭐가 남았어?"

"너 이제 아무것도 없어."


처음엔 내 생각인 줄 알았다. 자책할 때처럼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달랐다. 단순히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다. 이건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확신했다.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누구인지, 무엇인지. 처음에는 마음에서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때론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내 귀에서 직접 그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누군가가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원래였다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반응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놀라거나 두려워할 여력이 없었다. 그냥 그 목소리를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나에게 속삭였다.


"그냥 숨만 쉬고 살아. 희망 품지 마."

"이제 너는 아무것도 못해."

"너 원래 별로 잘하는 거 없어."

"너 맨날 말만 하고 이뤄지는 거 하나 없잖아."


목소리는 계속됐다.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거기 있는 게 편한 거야."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니, 열 힘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반박할 근거도 없었다. 그 목소리가 나에게 하는 말들은 모두 맞는 말처럼 들렸다. 따라서 반박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나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책하며 나를 찔렀던 그 순간들을. 후회하며 과거를 돌아봤던 그 장면들을. 목소리는 그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때로는 조롱했다.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비웃는 것처럼. 한심하다는 듯이. 때로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 "힘들지? 알아. 다 알아."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내 편인 것처럼.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마치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그래서 더 스며들었다. 그래서 더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목소리가 나를 더 어두운 곳으로 이끌었다.


그냥 스며들었다. 따뜻함 속에 독이 있었다. 위로 속에 파멸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구분할 힘이 없었다. 눈이 떠있는 순간 내내 목소리는 나와 함께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기 있었다. 낮 동안 계속 있었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 있었다. 잠든 동안만 잠시 멈췄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목소리는 그림자처럼 나에게 붙어있었다. 떼어낼 수 없었다. 이건 악마의 속삭임이 확실했다. 유혹하듯. 파멸로 이끌듯. 이 목소리는 때로는 적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나 자신처럼 말했다.


분명한 건 하나였다. 목소리는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물었다.

"그 고통, 끝내고 싶지 않아?"

끝내고 싶었다. 이 어둠이, 이 감옥이, 이 목소리가,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랐다.


"방법이 있어."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리켰다. 아니, 가리킨 것 같았다. 감옥의 창살 너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넓고, 깊고, 끝없이 펼쳐진 무언가가 보였다.


바다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를 그 앞에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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