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후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by 김성현

자책은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유죄 판결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평생 영원히 벌 받기로 했다.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감옥은 춥고 어두웠다. 너무나 괴로웠다. 고요했다. 그 어떤 감각들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처음엔 그저 정적만 있었다. 침묵. 어둠. 그리고 나.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그 속에서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감옥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이 없었다. 발을 디뎌도 밟을 곳이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느낌은 우주 속 무중력에 버려진 것 같았다. 방향도, 중력도, 기준도 없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존재하지만 무가치하다고 느껴졌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 같았다. 이렇게 인간에게 무력감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다 그 공간 속에서 후회가 찾아왔다.


과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가 떠올랐다. 점점 강해졌다.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과거로 가고 있었다. 블랙홀에 빨려들 듯 저항할 수 없었다. 시간이 구부러지는 것 같았다. 공간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무너졌다.


나는 던져졌다. 이곳저곳으로, 순서 없이, 그 순간들로.


장면들이 보였다. 최근의 순간들이 먼저 왔다. 며칠 전, 몇 주 전, 몇 달 전. 그리고 점점 더 과거로 갔다. 1년 전, 2년 전, 그보다 더 전으로. 순서는 없었다. 시간은 뒤죽박죽이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일수록 생생했다. 그 디테일들이 보였다. 그때의 날씨, 그때의 빛, 그때의 소리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블랙홀에 빠져 들어가 그 5차원의 힘에 의해 과거의 시점들을 3인칭 시점으로 본 것처럼 나 또한 과거의 나를 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였다. 그때의 감정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의 두려움이, 그때의 고통이. 과거의 감정이 후회라는 블랙홀에 빠져 들어간 현재의 나를 관통했다.


투명한 벽 너머로 후회스러운 과거의 순간들을 봤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그 벽을 넘어보려고 했다. 손을 뻗었다. 소리쳤다. "그렇게 하지 마. 다르게 해." 하지만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손은 닿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그 순간들을 바꾸고 싶었다. 되돌리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할 수 있다면. 이번엔 다르게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앞으로만. 결코 뒤로 가지 않는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질서는 무질서로 간다. 깨진 유리잔은 스스로 복원되지 않는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의 불가역성이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나는 이 우주의 법칙에 도전하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리려 했다. 과거를 바꾸려 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없는데 되돌리고 싶은 마음. 바꿀 수 없는데 바꾸고 싶은 마음. 불가능한데 가능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후회는 고통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조금씩, 나는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받아들임이 더 고통스러웠다.


사람과 관련한 순간들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관계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준 순간들. 함께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순간들. 말할 수 있었는데 침묵한 순간들.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그 말을 했더라면." "그때 다르게 반응했더라면."

그 순간의 관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그 사람과의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순간의 눈빛이, 그 순간의 목소리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상황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면 현재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기 때문에.


후회는 일어날 수도 있었던 현실과 실제로 일어난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나는 두 개의 현실을 동시에 오가며 "할 수 있었어. 아니, 할 수 없었어. 아니, 할 수 있었어." 끝없이 반복했다. 실제로 일어난 것과, 일어날 수도 있었던 것을. 그 간극 사이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희망과 후회는 같은 시간 여행이다. 하지만 한 끗 차이로, 하나는 빛이 되고 하나는 어둠이 되었다. 사람들은 미래를 꿈꾼다. "언젠가 나는..." 그것은 희망이다. 나는 과거를 봤다. "그때 내가..." 그것은 고통이었다. 미래는 유동적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내가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다. 이미 일어났다. 내가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불가능이 있다. 같은 시간 여행이지만 희망과 후회는 이렇게 다르다.


미래를 상상할 때 나는 창조자가 된다. 과거를 후회할 때 나는 무력한 존재가 된다. 하나는 나를 살리고 하나는 나를 죽인다. "만약에"를 상상하는 것이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일어나지 않은 현실을 끝없이 그려냈다. 생존의 도구가 이제는 파괴의 도구가 되었다.


후회의 시간 여행 속 나는 나를 원망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원망의 대상이 확장되었다. 상황을 원망했다. "하필 그때였을까."하필 나에게였을까." 부모님을 원망했다. 가족을 원망했다. "왜 우리 부모님은, 왜 우리 가족은." 신을 원망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결국 모든 원망은 다시 나로 돌아왔다.


원망은 자책이 되었고, 자책은 또 다른 후회를 낳았고, 후회는 또 다른 원망을 낳았다. 출구가 없는 원이었다. 같은 장면으로 계속 돌아갔다. 해결하고 싶었다. 바꾸고 싶었다. 다시 할 수 있다면.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이랬으면 달랐을까." "저랬으면 달랐을까."


나는 과거의 같은 장면들을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갔다. 그 상황을 바꾸고 해결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계속해서 이끌었다. 그 과거를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는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과거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무한 반복이었다. 나의 뇌는 멈추지 못했다. 계속 시도했다. 계속 실패했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의 후회들을 받아들이고 산다. "나는 이것을 선택했어. 저것을 포기했지만, 괜찮아." 그리고 앞을 본다.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A를 선택한 순간, B와 C는 이미 사라졌다. 사라진 길은 영원히 사라진다. 내가 되지 못한 모든 나를 봤다. 다르게 선택했더라면 되었을 나를. 다르게 살았더라면 되었을 나를. 후회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나의 존재 자체를 후회했다.


나의 후회는 달랐다. 전면적이었다. 모든 것을 후회했다.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전체 인생을 후회했다. 특정 순간이 아니라 모든 순간을 후회했다. 시간이 치유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과거에 갇혔다. 학습의 도구가 아니라 파괴의 도구가 되었다. "다음엔 잘해야지"가 아니라 "나는 영원히 못 할 거야"가 되었다.


왜 이렇게 다를까?

보통 사람들은 "이번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만 틀렸다고 생각한다. 다음번엔 다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나는 "나"라는 존재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에서 틀렸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틀린다고 생각했다. 바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망이 없었다. 이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보통의 후회는 말한다. "내 선택이 틀렸다. 다음엔 다르게 하자." 나의 후회는 말했다. "나는 틀렸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후회가 행동에 대한 것에서 존재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후회가 쌓였다. 하나, 둘, 셋... 점점 더 많아졌다. 그것들이 창살처럼 나를 가뒀다. 점점 더 촘촘해졌다. 후회가 올 때마다 창살이 하나씩 늘어났다. 과거의 순간마다 하나씩 늘어났다.


어느 순간 창살들이 너무 촘촘해져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과거에 갇혔다. 현재를 볼 수 없었다.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사라졌다. 과거만 있었다. 현재는 과거를 후회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미래를 봐. 앞을 봐." 하지만 나는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도 과거만 보였다.

밤이 되면 잠들 수 없었다. 과거가 끊임없이 찾아왔다. 눈을 감으면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잠들어도 꿈에서 또 봤다. "그때 다르게 했더라면..." 같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되감기, 재생, 되감기, 재생이 반복되었다. 멈출 수 없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에너지는 고갈되었다.

시간 여행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에너지를 준다. 희망은 나를 살게 한다. 반면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에너지를 빼앗는다. 후회는 나를 죽게 한다.


나는 계속 과거로 시간 여행을 했다. 점점 더 지쳤다. 점점 더 소진되었다. 점점 더 사라졌다. 후회는 문이었다. 더 깊은 우울로 가는 문이었다. 그 너머에는 더 깊은 어둠이 있었다. 감옥은 더 좁아졌다. 어둠은 더 깊어졌다. 창살은 더 촘촘해졌다.


저항할 수 없었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지점을 이미 넘었다. 나는 그 중심을 향해 떨어졌다. 모든 것이 무한대가 되는 곳으로. 시간도, 공간도, 중력도 무한대가 되는 곳으로.


그리고 고통도 무한대가 되는 곳으로.

"시간말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의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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