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번이고 잠들고 일어나고 꿈을 꿔봤지만 그 어느 것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뜰 때마다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고, 이제 남은 것은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끊어지고, 무너지고, 추락한 이 모든 것이 진짜였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수많은 질문들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왔을까. 왜 모든 불행이 동시에 왔을까. 나는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부족하지. 왜 다 잘하려고 했는데 다 망가지기만 하는 거지. 왜 항상 이 모양이고, 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지. 언제까지 인내하고 버텨야 하는 걸까. 내 인생에 진짜 빛이 비치는 날이 올까.
이와 동시에 나 스스로 답하기 시작했다. 난 앞으로 일어설 수 없겠다. 나 같은 사람이 꿈을 품는 거, 미래의 희망을 품는 거, 그거 허황되고 과분한 일이었구나.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낄 수도 없겠다. 난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나의 부족함이 부끄러웠고, 더 이상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쓸모없었고 존재자치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책이 시작되었다. 다 내 잘못이었다. 다 내가 문제였고, 내가 다 망쳤다. 이 모든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불행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도, 전부 내 탓이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현실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 감정들을 견디기 위해서는, 나를 계속 찔러야 했다. 나를 아프게 해야 했고, 나를 고통스럽게 해야 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향해 던지는 수많은 자책의 말들은 총알이 되어 날아왔다. 과녁은 나였고, 나 스스로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 불행한 상황 하나하나가 모두 화살이 되어 내 마음을 향해 쏘기 시작하고, 나는 나에게 활시위를 당겼다. 숨 쉴 때마다 그 공기는 칼이 되어 내 심장과 폐에 칼이 꽂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깊이, 더 깊이 매 순간 나는 나를 찔렀다. 자책하는 순간마다, 이 상황을 생각하는 순간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심장이 아팠다. 가슴 한가운데가 욱신거렸고,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마음이 아프니 심장도 아팠고, 심장이 아프니 마음도 더 아팠다. 그리고 몸은 계속 미열이 나고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나 스스로에게 던치는 이 자책의 생각은 같은 궤도를, 같은 원을 끝없이 맴돌았다. 출구는 없었고, 나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벽을 두들겨봤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니, 듣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그런데 나는 나를 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책하면 할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졌다. 내가 이 상황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난 그저 무능한 존재일 뿐이었다.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할수록 나는 정말로 더 약해졌고, 내가 쓸모없다고 여길수록 나는 정말로 무가치해졌다. 악순환이었다. 자책은 스스로를 더 자책할 이유를 만들었다. 나는 그 고리 안에서 점점 작아졌고, 점점 무너졌고, 점점 사라졌다.
나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안 됐다. 나는 벌 받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니까. 내가 만든 결과니까. 내가 망가뜨린 것들이니까.
나는 결심했다.
평생 영원히 나 자신을 벌하기로. 용서하지 않기로.
그렇게 난 나 스스로를 법정에 세우고 내가 재판관이 되어 날 심판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자책이라는 펜으로 심장을 잉크 삼아 나를 심판하고 벌할 판결문의 문장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피고인에게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주문:
피고인은 유죄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판결 이유:
피고인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책임이 있다.
피고인이 겪는 이 모든 불행은 당연한 결과이다.
피고인은 마땅히 이 결과들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 누구도 이를 반박할 수 없다.
형의 선고:
따라서 형을 선고한다. 앞으로
피고인은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피고인은 꿈을 꿀 수 없다.
피고인은 사랑받을 수 없다.
피고인은 도전할 자격이 없다.
피고인은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
피고인은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없다.
이 판결은 즉시 효력을 발생하며,
항소는 기각되며,
평생 영원히 유효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나를 끝없는 어둠 속에 가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나를 완전한 단절 속에 가뒀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곳에. 현실을 대면하지 못한 나를 깊은 마비 속에 가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 그리고 그 모든 감옥을 하나로 묶었다. 탈출구는 없었고, 창문도 없었고, 문도 없었다.
평생 영원히 벌 받을 것이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자책은 처음부터 강렬했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폭력적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잔인해졌다. 더 강렬해졌고, 더 용서 없이 나를 찔렀다. 눈 떠있는 모든 순간이 자책의 시간이었다.
밤이 와도, 아침이 와도, 나는 그 감옥 안에 있었다. 잠들기 전에도, 잠에서 깨어나서도, 나는 그곳에 있었다.
나는 유죄다. 나는 유죄다. 나는 유죄다.
그렇게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계속 자책하다가, 나는 지쳐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