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 꽃밭에서

by 글그림



수없이 넘어 계절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곳


붉은 해 꼬리를 붙잡고

아스라이 펼쳐져 있을

꿈같은 노을빛 꽃밭


빛에 물들어

반짝이는 꽃잎들

저녁놀이 안개처럼 피어오른

하늘 가장자리


가녀린 꽃잎의 숨결이

붉은 뺨에 내려앉던 저녁

포근한 이불처럼

몸을 감싸던 구름


수많은 꽃술의 부드러운 가루

하늘하늘 속삭이는 소리

찬바람이 장난을 걸어도

아픈 기색 하나 없이

미소 짓던 곳


육신을 벗은 꿈 속에서만

담장 너머 붉게 타오르는

노을의 머리칼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그대의 품처럼

안온했던 꽃밭


먼 훗날에도

다시 찾아가련다

쏟아지는 빛 속에서

눈을 떴을 때의 황홀함


희미해진 꿈을 따라

온종일 길을 헤매더라도


휘청거리는 그림자가

땅에 길게 누울 때까지


수없이 계절을 헤매도

붉은 꽃밭을 찾아가련다


낡은 바람개비만

먼지 이는 황혼 속을

힘겹게 돌아가는 곳


신발 밑창

마른 흙먼지만 붙더라도


현실의 삶은

메마른 땅과 닿을 수 없는 벽


산 그림자

붉게 타오르는 석양 아래

홀로 핀 꽃 한 송이

나와 같은 슬픔


꽃밭은 보이지 않고

굳게 박힌 발걸음은

쓸쓸한 증거가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