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같은 자리를 내어준다

by 글그림



산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밤마다 어깨를 움츠린다

바람이 귀에 속삭인 얘기들을

잊지 못한 듯, 자꾸만 되뇐다


초승달이 넘어가는 산마루

가장 은밀한 말을 걸어 놓고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안개를 드리운 장막


산을 오르는 이들은

그 무게를 모른다

풍경이라 부르고

사진 한 장에 접어둔다


산은 수천 겹의 발자국

낡아버린 이름 하나

비탈진 곳에 꿰어

묵묵히 기다린다


여름날 폭우에 무너진 길목에서

산은 조용히 뼈를 드러낸다

잎의 떨림으로 울음을 참는다

말 한마디 없이 지워진 생애가

울창한 숲의 그늘에 담긴다


산에 귀를 얹어보라

바위의 오래된 속삭임은

침묵이 되어 말보다

헛디디는 뿌리에 부서지니

등 뒤로 쓸쓸히 돌아오는

구름에 가린다


산은 당신의 뒷모습이다

돌아서기 전의 고백

부러진 그림자와

당신이 남긴 호흡까지

이끼 속에 묻어두었다


묵직한 슬픔은

움직이지 않고도

시간을 껴안고 있는 것

흔들림 없이 서기 위해

산은 얼마나 많은

돌들을 깨어냈을까


오늘도

산은 가만히

자리를 내어준 채

가장 멀리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