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의 그늘

by 글그림



바람이 일어난다

말 없던 그늘 숨 뒤에서 들여다본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태웠던가


말이 꽃처럼 피었다가

너무 많아 무거워진 꽃대

향기 없이 지는 봄은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깨 위에서 움직이지 않던

구름은 물구나무를 섰다

바람은 입술 사이로

이빨을 갈며 서성였고

소낙비는

눈빛을 흘깃이며

땅 위로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땅은 눅눅한 기억의 웅덩이가 생겼다

풋내 같은 말들은

풀피리를 입에 문 채

씁쓸한 바람을 말하였다


흙과 풀냄새가 섞여 비린내가 날 때

바람꽃은 피어났다

누군가의 발목에 밟히기를 기다리는

향기 없는 꽃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

너를 심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혼자가 된다는 건

사랑의 무게를

혼자 들어 올리는 일이라는 것도


나는

땅의 심장을 어루만지며

반란을 거두기로 했다

너를 향해 피어나는 꽃들도

조금씩 향기를 품었다


향기로운 사랑도

내려앉은 슬픔도

꽃을 꺾지 않으려는 마음

들판 가득 메워지는 수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