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돌아온다

by 글그림


구름이 허연 귀를 들고

비는 숲을 흔든다

비옷 입은 나무 아래

잘게 부서진 방울은

땅을 가위질한다


풀잎들은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날벌레들은 나뭇잎 뒤로 접힌다

소낙비는 몸을 나누며

눈꺼풀 밑에 고였다가

빗방울에 서성인다


오래전 품팔이 갔던 비가

이제야 돌아온 것처럼

마당 끝 붉은 물길을 따라

맨발로 돌아온다

바람이 빗장을 푼 창문

축축한 소리가 머문다


조용한 백색의 소음이

귀를 두드리면

빈 의자는 그저 듣는다


비는 다시 태어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땅에 낙하한다


아무 말 없이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본다

꺼끌 거리는 기억 하나가

사방을 가득 채울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