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변조

by 글그림



눈꺼풀을 열자

소나기는 이름부터 부른다

모서리마다 물이 고이고

눅눅한 손톱이 불안하게 창을 두드리는 소리

여름 장마는 불청객처럼 문을 열고 들어왔다


땀샘이 흐르는 방향으로

열꽃 모양의 더위들은

아파트 외벽을 기어오른다


나는 아직

봄의 발췌록을 다 읽지 못했다

페이지마다 아직 향기가 남고

밑줄 친 구절 위에

바스러진 꽃잎이 애처롭다


비는 소리를 지우고

땀과 얼음이 뒤석인

유리컵을 타고 흐른다

익숙한 이름을 바꿔야겠다

입 안에 낯선 여름을 담아

천천히 타오르는 열기로

봄의 흔적을 지워내듯이


눈은 이미

기억보다 앞서 울고 있다

한때 꽃이었을 빗방울은

반쯤 녹아 무릎에까지 차오르고

드디어 여름이

내 안의 봄을 녹여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