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책 등을 타고 흐르면
나의 저녁이 펼쳐집니다
모서리가 헐은 표지들 위로
햇빛이 책장 틈에 기울며
내려앉은 곳에 접어두었던
별빛이 반짝이는 걸 봅니다
긴장한 듯 얹힌 꽃잎 하나가
말을 고르고 있었고
조심히 꺼내 앉은 의자는
연분홍 그늘을 남기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펴놓은
지우다 만 질문을
찻물에 부유하는 마른 잎처럼
불려 갑니다
책상과 의자사이
절벽 같은 여백 아래로 마음이
조용히 떨어지는 걸
당신은 어쩌면 눈치챌지도 모릅니다
말이 되기 전의 표정들이
페이지마다 주석으로 남아
눈을 찡그리며 읽어봅니다
어쩌면
책이 아니라
천천히 흐르고 있는
당신의 저녁을
읽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