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 멈춘 자리
닳은 벤치의 나뭇결 사이
신호등이 깜빡이는 찰나
버려진 신문의 펄럭이는 소리
나는 이름 없는 메아리
커피 잔에 남은 갈색 고리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의 반짝임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저녁빛
내가 머물면 세상은 잠깐 숨을 멈춘다
나는 안개로 녹아들고
가로등 불빛에 흩어지는 먼지가 된다
당신이 손을 뻗을 때
믿음은 나를 바람 속으로 흩는다
아스팔트가 조용히 젖어가도
아직 내리는 비를 느끼지 못한다
유리창 너머
사람들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겹친다
오늘은 공기가 유난히 서슬 하다
빌딩 사이로 부서지는 빛
난간에 맺힌 이슬 한 방울
나는 부서진 연필심이었고
구겨진 종이컵이었고
길가에 떨어진 단추였다
보이지 않아도 모든 것에 머물지만
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사람들은 빠르게 길을 지난다
발걸음이 나에게 멈춘 이들은
허공을 바라본다
나는 별 의미가 없어
그들을 붙잡지 못한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
벽에 새긴 작은 균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당신이 지나친 골목 끝
모든 것의 틈새에
나는
아직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