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 내리던 비가
풀잎들을 밀어 올린 탓에
바람은 숲 가장자리에서
흔적을 되감아
오솔길을 조여왔다
젖은 나무껍질 아래에서
이끼는 맨살처럼 드러났다
누구의 기억도 닿지 않았으므로
옆구리를 돌아 나왔다
비에 씻긴 돌이 길을 만들고 있었다
길을 본 것도
놓친 것도
아닌 듯싶어
내내 뒤를 돌아보았다
빗방울이 갈고리처럼
추억을 끌어당길 때
풀잎이 우듬지를 감싸며 떠는 것을
지켜보다
손끝에 닿은 물기를
주머니에 옮겨 담았다
젖은 흙냄새와 함께
깊은 곳까지 들어온
길도 없고 발도 없는 기억들이
작은 물웅덩이로 웅크리고 있었다
손에 쥐었던 언덕은 끝내 구름이 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가장 낮은 하늘이 기억할 것이다
둥지를 털고 떠난 새들의 흔적은
공허하다
그 모든 비문 아래
단 한 번
오솔길을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