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by 글그림



너무 아파서

무릎 꿇은 채로 코를 푼 적이 있다

천장은 생각보다 높았고

손등에 묻은 건 독감인가 인생인가 궁금했다


절벽은 서늘했다

봄이 와도 벽지는 차갑다

붙인 메모지는 떨어지고

투명한 테이프 자국만 남았다


절벽이라는 단어는

한눈에 보는 달력 같다

시작한 날과 끝난 날이 함께 보인다

이번 달 1일이 왜 화요일인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창틀에 발을 올려두면

바닥보다 하늘이 가까워 보였다

열병에 눈을 감으면

흔들리는 건 마음이었다


말을 줄이면 생각이 남는다

생각은 말보다 오래 버틴다

입을 다물면

표정이 천천히 굳고

식은땀이 벌겋게 흐른다


절벽에는 손잡이가 없다

기댈 수 없다는 뜻이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벅지 아래로 저림이 내려온다

딛지 못한 시간들이

다리 아래에서 뭉치고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