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고 뒤집어쓴 이불처럼
한때는 답답해 숨을 몰아쉬던 것들이
어느새 적당한 무게가 되어 눌러앉아
새 신발을 신고도
진창을 걱정하기보다
어디든 닿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밥을 앞에 두고도
맛보다 영양을 먼저 떠올리면서도
오래된 가게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하며
창가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다가
그곳이 어딘지조차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언젠가부터
이름보다 호칭이 먼저 떠오르고
생일보다 부고를 더 많이 챙기게 되면서부터는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생각이 든다
“잘 살고 있지? “라는 어머니의 질문에
“그럼, 괜찮아” 하고 대답하는 게
오래된 연필처럼
잡고 있던 마음이 닳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거울 속에서
낯선 얼굴이 반갑게 느껴질 때
손에 익은 것들을 곱씹으며
더 편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