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플라워

by 글그림



잃어버린 것은 향기뿐인 줄 알았지만

시든 꽃잎은 봄을 기억한다


모든 것을 잊고 남겨진 겨울의 정원

거기서 나는 당신의 얼굴을 파내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봄을 상상했다


파헤쳐진 땅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나는 뿌리가 끊어진 채로 서야했다


당신이 심었던 첫 번째 계절은

온통 빛과 향기로 가득 찬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아름다운 건 꽃이 아니라

잎이 떨어지고

꽃대가 잘려나간뒤에 남는

그늘이었다


꽃잎이 없어도 나는 나였고

향기가 없어도 나는 나였다


존재는 당신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침묵이었다


당신의 눈보라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되기를 연습한다


꽃 한 송이 피워내지 못했던

나의 첫 번째 생은

이제 당신 없이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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