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

by 글그림



창밖을 기웃거리는 건

아직 할 일 없는 우리의 망설임일 거예요


분수대의 입술 같은 건

거짓의 맛이에요

여름 내내 물을 아끼는 중입니다


우리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척

손을 뻗으면 닿는 천장에는

네모난 노란 스티커들이 만져져요


의자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실타래는

어제 주문한 민트색 니트의 올일까요


당신의 난감한 질문

계단은 어디까지 휘어질 수 있냐고

바닥에 엎질러진 물감은

어떤 기억에 속하는지


쭈그리고 앉아 전봇대의 그림자를 만집니다

혹시나 돈이 떨어져 있나 싶어서요


발끝에서부터 생기는 먼지의 비상은

어쩌면 우리의 비상일 수도 있구요


아직 닫히지 않은 무인 편의점 내부에는

두 개의 평행한 벽을 응시하는

CCTV가 있습니다


철봉을 잡은 손바닥 냄새가 나는

캔맥주를 따 놓습니다


손등 위에는 여름 한정판 흉터들

이마를 가르는 분침 없는 고장 난 시계

우리는 우리의 여름을

중고장터에 올릴 수도 없었지요


발을 버둥거리며 날아나는 종이비행기처럼

의자를 걷어차고 사라지는

은퇴한 신부들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장미가 캐롤을 불러줬으면 하는데

아직 이르긴 하군요


장미가시에 찔린 다음 날의 침묵처럼

벽과 벽 사이로 불어오는

섬유유연제 향기


접시에 옮겨 담긴 계란빵의 온기 속에서

어디가 위쪽인지 알 필요 없다는 듯

나의 두 손을 뻗어

지나는 구름의 모양을 캡처하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심합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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