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by 글그림



진짜 사랑스러운 고독이

나를 잠식하고 있어


밤이 너무 벅찰 때는

거울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게 나의 일이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 겪었다고

시치미 떼는 생각들 때문에


숙취해소제 대신 독약을

마신 듯한 기분으로 빈 거리에 갇혔지


벽에 기대선 취객이 낙서된

성화(聖畫)를 보면서 혼잣말을 해


부활절 첫 예배는 새벽 5시래

여러 색을 칠한 달걀들이 모인데


취객이 예배당 문턱을 넘어서면

아마 그가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일 거야


나는 이웃들의 기도소리를 들어

되게 아득한 소문처럼

잊혀진 노래의 제목처럼 들려


너희는 그때도 편안하게 살았어?

진짜 편안했어?


내가 친절 베풀 때도

내 고통 모르는 척 눈감을 때도 말이야

너희에게서 내가 필요 없어질까 봐

실은 먼저 불안했던 거 아냐?


나의 아스팔트는

리얼리티 쇼의 정지 화면이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로운 파편들이

와장창!!

찐득한 잉크처럼 번져나가는 중이야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삼키기가 힘들어


길에서 전도지(傳道紙)를 주었던 소녀 있잖아

엉망진창인 진심에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강아지 한 마리가 길모퉁이에서

길을 잃고 울었으면 좋겠다는

내 안의 못된 알고리즘은

비밀번호로 잠긴 지 오래됐어


신분증 맡겨야지만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은 이제 교회가 돼버렸지


자비로운 망각님, 있잖아요,

우리는 이미

세상의 '인기 검색어' 목록에서

지워져 버린 거야


만약 내가 지금 이 모양이 아니었다면,

내가 조금 더 자유로웠다면

너는 너만의 평화를 찾을 수도 있겠지


낯선 타국에도 사람들이 살아

그곳에도

광야가 있고

하나님이 있고

금방이라도 증발할 것 같은

가로등도 있지만


지금처럼 고독한

너는

여기 없네


낡은 생각들에 잠긴 채 육교를 건너는 중이겠지

책가방이랑 도시락을 챙기면서

내일의 '할 일'이 적힌 쪽지를 펼치면서

얼굴에는 미소를 짓는 거겠지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게 좋은 이유는

넘어졌던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나는 나의 고독이

깨지지 않게 하려고


가장 깊은 곳에

얼음보다 단단한

심장을 품고 있어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