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던 동네의 낡은 책방에 들러
볕 좋은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 속에 마른 꽃마리 하나가
바스러져 향을 내었습니다
화단 귀퉁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다 보면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나무들이
가지를 섞고 그늘을 나누는 일이
우리에게는 왜 어려웠을까 생각했습니다
주머니에 함께 넣어둘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가령 한 손에는 어디에도 맞지 않는 열쇠를 쥐고
다른 손에는 깨진 거울을 쥐는 일 같은 것
상처는 아플 것이란 걸 알았지만
어느 쪽이 더 오래된 상처인지 알 수 없어서
다른 주머니에 각각 넣어두었지만
선택에 대한 질문지는 없었습니다
잊히기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사랑이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창가에 놓인 낡은 의자에 앉습니다
삐걱이는 소리를 굳이 멈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신이 있던 낡은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눈을 뜨는 연습을 합니다
볕이 들고
바람이 머물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