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내 몸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을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왜 내 몸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을까?
나는 저속노화(slow aging)가 일상처럼 자리 잡힌 노르웨이에서 22년을 살았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 머물러 있었다.
더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방식이
내 안에 자연스러웠다.
나는 성실함과 의지를 삶의 미덕이라 믿었다.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쉬는 건 나약함이라 여겼고, 멈추는 건 실패처럼 느껴졌다. 목표를 달성해도 잠깐 기뻤을 뿐, 곧 다음 목표를 향해 다시 달려야 했다.
그렇게 살게 된 이유를 돌아보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딸만 일곱인 집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막내가 태어날 때는 아들이기를 기도했을 정도로,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쉬움이 담긴 어른들의 반응을 자주 봤다.
여자로서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착하고 성실하게, 실수 없이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그 욕구는 나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했다.
그 과정에서 몸의 말은 듣지 못했다. 오직 마음의 소리만 따랐다.
한동안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알아도 무시했다.
늘 바빴고, 참고 견디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피곤함은 흔한 일이라 여겼고, 두통이나 소화불량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은 ‘조금만 더’라는 내 내면의 소리에 눌려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러다 병이 왔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몸의 반응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멈춤의 사인이었다.
그제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그 질문 끝에, 나는 하나의 사실을 마주했다.
살아내는 데만 집중하느라,
지금 살아가는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는 것.
몸은 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말했고, 통증으로 무리를 알려줬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 할 수 있어’, ‘조금만 더’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려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피곤하면 쉬어도 괜찮고,
아프면 탓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한다.
내 몸은 나를 지키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와 내 몸 사이의 거리는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자기 돌봄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