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없앤다고 스트레스가 없어지지 않더라…
정희원 박사의 『저속노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의 관심은 단순히 노쇠를 예방하는 데 있지 않았다. 나는 그보다는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삶의 후반부를 ‘병 없이’ 보내고 싶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질병을 앓고 난 뒤에야 실감한 몸과 마음의 고통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오랜 시간 정형외과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분들, 낙상으로 수술 후 힘겹게 회복하던 노인들. 그분들의 몸과 마음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덕분에 자연스레 노화에 대한 관심과 경험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땐 그저 그분들의 ‘문제’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아프고 나니 그것은 멀지 않은 ’나의 문제’가 되었다.
이 자각은 놀라웠고, 동시에 감사한 일이었다.
『저속노화』에서 정희원 박사는 수면, 영양, 운동, 스트레스 관리, 사회적 관계, 의미 있는 삶 등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 노화 속도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없애면 없어질 줄 알았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염증 수치가 높을 때마다 의사는 늘 물었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어요?”
참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내겐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었다.
“일도 안 하고 쉬고 있는데 무슨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인가요?”
나는 그렇게 되묻곤 했다.
그땐 몰랐다.
그동안 내가 일로부터 받았던 스트레스는 단지 나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나에게 자아 효능감과 성취감을 주는 통로이기도 했다는 것을.
‘과도한 업무’를 내려놓자, ‘내 존재 가치’도 함께 내려놓아 버린 것 같았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공허함과 무기력으로 점점 침잠해갔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스트레스를 ‘제거’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 빈자리를 의미 없는 공허함이 대신할 수도 있다는 것.
스트레스 관리란 단지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의미를 채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무엇을 할 때 가장 만족스럽니?”
처음엔 이 질문조차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조차 가물가물했으니까.
그 무렵 안식년을 맞은 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벚꽃이 만발한 길을 산책하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것들을 함께 해보았다.
수영, 자전거, 요가…
자전거를 못 타던 내가 온천천을 달렸고,
물에 뜨지도 못했던 내가 자유형으로 몇 미터를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혼자였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그러나 함께였기에 가능했고, 그 경험들은 내 안의 자아 효능감을 되살려 주었다.
내 존재가 쓸모없다고 느끼던 마음에도 작지만 분명한 빛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저속노화의 삶이란 늦추는 삶이 아니라, 되찾는 삶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나를, 놓치고 있던 기쁨을, 돌보지 못했던 내 안의 소리를.
스트레스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 자리를 채우는 방식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