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
4년 전 발병한 자가면역질환은 내가 나를 공격하는 병이었다.
이 역설적인 병은 여러 가지 통증을 유발했다.
더 놀라운 건 이미 그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언제 그게 발현될지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잠시 한숨을 돌릴 만한 여유가 생겼을 때였다,
매일 긴장 속에 총총거리며 지냈는데,
아이들이 기관에 잘 적응하여 한숨 돌리며 내 시간이 조금씩 생기던 참이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통증은 병명을 알 수 없어 더 두렵기만 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모든 관절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밤새 아프다 고통이 잠잠해지는 그 아침 직전의 평안함에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은 내가 아플 때 한 발 앞서 아프곤 한다.
출산 때도 그렇고, 이번에 루푸스에 걸렸을 때도 병원에 있었다.
아이들이 걱정돼 입원도 못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소식들 듣고 오셔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 수액을 맞혀 주시고,
반찬가게와 빵집에서 갖가지 음식들을 사 와 뭐라도 먹어보라고 하셨다.
좀 더 쉬고 회복하라며 아이들도 데려가서 돌봐주셨다.
그렇게 가장 큰 고비는 넘기고 사인곡선처럼 고통과 회복을 주기를 달렸다.
여러 증상들이 지나가고 막바지에는 몸은 너무 아픈데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루푸스 때문인 것 같았지만 연관관계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도저히 안 돼서 암 환자가 맞는다는 수액까지 맞으며 기력을 찾아보려 했다.
큰아들 아침 주고 누워 있고 점심 먹고 누워 있고 저녁 먹고 누웠다.
몸이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며 겉옷까지 껴입고 이불을 뒤집어서 쓰고 웅크려있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오늘만 생각할 수 있는 아니 이 순간만 지나가기를 바라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고통의 끝까지 달리고 나서야 점차 몸이 회복되어 평범한 날을 되찾게 되었다.
아프지 않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신이 났다.
몸이 회복되고 나서 그동안 못한 서러움을 달래듯이 공부를 하고, 나의 길을 열심히 모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가 “엄마 이젠 괜찮아?”
잠시 할머니 집에 맡겨졌던 아이들은 말못할 불안함을 가졌던가 보다.
함께 자고 일어났을 때 옆에서 아파하는 것을 보았던 아이는 두려웠을 것이다.
특히 마음이 여리고 감정이 풍부했던 둘째는 그때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너무 걱정됐다고 했다.
나는 내가 나은 것에만 기뻐하며 아이들의 상처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젠 괜찮아, 엄마 건강해졌어."
지난 간 몸의 고통보다 오늘의 마음이 고통이 찌릿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