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은 내가 정한다.
깊은 새벽, 모두가 잠든 이 시간 고요한 공간에 홀로 앉아 호흡에 집중합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늦은 시간까지 함께했습니다.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짐도 해보았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밀어내며 다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몸을 이완시키며 점차 가벼워지는 감각을 느껴봅니다. 온전히 호흡과 내 몸, 그리고 마음에만 집중하는 이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오늘은 '청각과 소리'를 주제로 명상을 이어갑니다. 제가 고요한 새벽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극이 최소화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스름한 새벽은 시각이나 청각 정보가 가장 적게 인식됩니다. 정보가 과잉된 현대 사회에서 감각의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라 생각합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정보를 쫓는 우리에게, 잠들지 않은 상태로 감각을 비워내는 사유의 시간은 얼마나 허락되고 있을까요?
앤 르클레어는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존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텅 빈 공백이 아니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나'라는 존재의 소리일 것입니다.
아이에게 자아가 생기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펴거나 떼를 쓰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날카롭고 큰 소리가 반복될수록 스트레스도 커져갔습니다. 한동안은 그 소리가 견디기 힘들어 저 역시 아이에게 큰소리로 윽박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명상을 시작한 뒤로, 이제는 그 소리를 '아이의 간절함'이라 정의합니다.
그 순간, 스트레스로만 받아들여졌던 날카로운 소음은 아이와의 '소통을 위한 신호'로 변합니다. 존 메이어의 말처럼 "세상을 관찰하라. 말은 필요 없다. 조용히 듣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가질 때, 소음은 비로소 이해의 대상이 됩니다. 같은 소리라도 우리의 정의에 따라 소음이 될 수도,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특정 소리에 고통받고 있다면, 소리를 탓하기보다 우리 마음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보는 건 어떨까요?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했듯,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에 평화로운 사유의 시간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