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를 이기는 기계적 성실함
성취 뒤에 찾아오는 공허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냥 계속하는 것'뿐이다.
작가는 울트라마라톤이라는 육체적 극한을 통과한 뒤, 한동안 달리기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울트라마라톤은 마라톤의 정점이자 한계의 끝이다. 그 압도적인 도전을 완수한 뒤에 마주하는 것은 더 높은 산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 막막함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자각은 때로 그다음의 동력을 잠식해버린다.
우리는 흔히 간절히 원하던 목표를 이룬 뒤 예상치 못한 우울감이나 공허함에 빠지곤 한다. 이는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목표는 도달하면 사라지는 종착지이지만, 목적은 삶이 계속되는 한 유지되어야 하는 방향성이다. 만약 작가의 지향점이 단순한 완주가 아니라 ‘평생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 혹은 ‘육체적 한계에 굴복하지 않는 삶의 태도’라는 본질적인 목적에 닿아 있었다면, 그는 곧바로 트라이애슬론이나 또 다른 기록 경신을 향해 주저 없이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그다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흥미가 사라진 지점에서 발을 멈추지만, 작가는 달리기 자체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기계적'이라 할 만큼 무미건조하게 달림으로써 권태의 시간을 통과했다. 감정이 메마른 자리에서 몸의 감각이 다시 깨어날 때까지, 그는 단지 달리는 행위 자체를 지속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갈증 난 몸이 신선한 과일을 원하듯 몸이 스스로 달리기를 희구하는 회복의 단계에 올라섰다.
결국 권태의 끝을 맺는 것은 '꾸준함'이라는 근력이다. 꾸준함은 단순히 반복하는 힘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졌을 때조차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고도의 규율이자 재능이다. 이는 특별한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천부적인 능력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노력을 쌓아 올린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후천적인 실력이다.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권태는 피할 수 없는 구간이다. 하지만 그 구간을 지나는 유일한 해법은 성실하게 발을 내딛는 것뿐이다. 이유도 모른 채, 때로는 아무런 보상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묵묵히 이어가는 꾸준함만이 우리를 다시 살아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