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에 일이 좀 있어요.

우울증과 함께한 우리 가족의 4년

by writeNow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언뜻 핑계로 들리거나

심각한 일이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말.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

그 말을 이렇게 자주 사용하게 될 줄이야.


보통 집에 일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더 묻지 않고

어서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말은 편리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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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7. 2021

우리 언니는 심한 우울증, 혹은 조현병으로 추정되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

환각과 환청,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려고 한다는 망상이 있다.

약을 먹으면 괜찮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시작된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약을 먹기 전으로 돌아간다.

약이 아니면 나아지는 법은 없다.


발병하기 몇 해전부터 우울증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1년에 몇주 밖에 언니를 보지 못했고

그나마도 나는 서울에서 바쁘게 생활하느라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언니는 독일에서의 생활이 힘들지만, 많이 적응했다고 했다.

우리는 언니가 이상하다는 걸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다.


언니가 본격적으로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건 몇개월 전.

언니의 친한 친구들이, 엄마를 통해서 내 번호를 얻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나는 하고 있던 공부를 내팽개치고 당장 언니를 데리러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갔다.

같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집에 일이 있어서" 프로젝트를 미뤄야겠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이해해주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건, 독일에 가서 언니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외국에 다녀온 사람은 무조건 자가에서 2주 간 격리 되어야했다.


언니와 함께 했던 2주의 격리 기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나는 언니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밤마다 혼자서 울었고

온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았다.


그때 가장 힘이 되어준 것은 당시에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였다.

"울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나."

울면서 가까스로 말했다. 그러자 남자친구가 차분하고 똑부러진 말투로 말했다.

"지금 통제할 수 있는 것만 통제하자. 네 마음도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야."


나는 그 말에 정말로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내 눈물은 내가 통제할 수 있어."


그 이후로도 나는 수없이 울었지만

그때마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진정할 수 있었다.

그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고 내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알았지만 함께 절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거리감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언니가 약을 끊었다는 걸 알자마자, 나는 이제는 전남자친구가 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이 힘든 상황에서

한번 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에게

특히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

돌발 행동과 사건은 일상이 된다.


비관적인 문자를 한통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가족이 다 싫다고 만나지 않겠다고 통보하거나

약을 끊는 등의 사건이 잊을만 하면 찾아온다.


그런데 그런 일을 자주 겪는다고 해서 그것에 익숙해지거나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당황하고, 판단력을 잃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메타적으로 바라보고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친구나 연인, 혹은 상담사가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첫번째가 전 남자친구이자 지금은 친구로 남은 A이고

두번째가 정신과 선생님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친구의 추천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상담은 최소한으로 하고 약만 처방해주는 곳이 많은데

이 곳은 상담을 중요한 치료법으로 여겨, 꼬박꼬박 20분씩 상담을 해주신다.


언니를 챙기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가지각색이다.

상태가 좋지 않은 언니를 볼때 느끼는 절망감만큼,

언니가 잘 지내고 있을때에 느끼는 불안함과 죄책감도 크다.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언제 다시 잘못될 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고

죄책감을 느낀는 이유는 언니가 밉기 때문이다.

상태가 좋지 않았을때 느꼈던 감정들을 가족들은 풀데가 없다.

"아픈 사람이니 이해하자."

"언니의 상태가 안 좋으니 저 말은 진심이 아니다."

그렇게 넘어가려고 하지만 가슴에 날아와 꽂힌 비수들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언니가 괜찮아져도 나는 언니를 챙겨야한다.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만난다.

만나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우리는 애초에 그렇게 친한 자매도 아니었다.

나는 언니를 별로 존경하지 않고, 착하지만 답답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매였지 친구는 아니었다.

물론 가족이라는 기본적인 애정이 있고, 언니를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그다지 더 가까워 지고 싶거나 어떤 활동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일상의 일부를 언니를 위해 희생해야한다.

할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연애도 새로 시작하고 싶고, 공부도 해야한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내 시간을 언니에게 써야한다.


오늘은 언니랑 저녁을 먹고 싶지 않다.

언니의 축처진 입고리를 보면 나도 우울해지는 것 같다.

언니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화 소재가 별로 없는데도 이야기를 해야한다.

나는 즐거운 척 해야하고 관심있는 척 해야한다.

즐겁지 않다,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 나중에는 죄책감이 된다.


"아픈 사람인데, 챙길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서울에 친구도 없는데..."

내가 모른척하면 안되는데, 내 생각만 하고 있네. 나는 소시오패스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신다.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있는거라고.

언니를 귀찮아 하는 나도 있고, 언니를 걱정하는 나도 있다.

그런데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스스로 책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녀의 정신이 병들면, 나이든 부모님은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를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 정신병이 생기는 건지도 잘 모르고 병의 속성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한테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모든 걸 내가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책임감이 되었다.

모든 걸 내가 해야한다는 책임감.

내가 하는 판단에 언니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중압감.


그런것들이 모르는 사이에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항상 말씀하신다.

최선을 다할 수는 있지만

책임감을 느끼지 말라고,

잔인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결국 약을 안먹는 행동의 1차 적인 책임은 환자 본인에게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모든 걸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어차피 1-2년 안에 끝날 병이 아닌데

엄마, 아빠 모두 이 병에 대해 잘 알아야한다.

실수를 하더라도 부모님이 직접 언니의 병과 마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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