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호자도 자신을 챙겨야 한다.

by writeNow

대학생때, 학과 동기 여학생(이하 B)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 과는 한 학년에 40명이 채 안되는 소수학과라서 동기들끼리 두루두루 친한 느낌으로 지냈다.

그래서 나는 B와 특별히 친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충격이 컸다.


2학년이 되자, 학교를 잘 나오지 않더니 점점 B는 동기보다는 1학년 수업을 듣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친언니로부터 B의 장례식장에 와달라는 부고 문자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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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이 몇명 모여서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B의 친언니(이하 C)가 밝게 마중을 나와주었다.

C도 우리와 같은 대학교 학생으로, 안면은 없었지만 우리가 온 것을 꽤 반가워했다.


우리 외에는 조문객이 거의 없었다. 가족들이 방문객을 최소한으로만 받아서 작게 치르고 싶어한 모양이었다.

나는 왠지 그녀의 부모님을 뵐 낯이 없어서 바닥 무늬만 세었다.

영정사진 앞에서 짧게 묵념을 하고 상에 앉아 육개장을 받았다.

미처 몰랐는데, B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했다.

너무 밝고 유쾌한 친구였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그 친구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있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이렇게 될때까지 가족들은 뭘한거야?"

누가 뭐라고 대꾸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야' 라고 생각했다.


잠시후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식장으로 들어왔다.

C가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달려갔다. C의 남자친구인 것 같았다.

그때까지 밝게 접객하고 있던 C가 그 사람에게 안겨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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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언니가 아프게 되자, 나는 B와 C, 그리고 장례식장에 갔던 날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C가 남자친구에게 안겨서 울던 모습

가족을 탓하던 동기

영정사진 속의 B


나는 언니의 상태가 악화할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날을 떠올리며 C에 나를 투영했다.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우리 가족을 욕할 것 같았다.


나는 그날이 우리집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언니가 생을 스스로 마감하면 어떡하지. 나는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해 무너질 부모님이 더 걱정되었다.

내가 그날 쉽게 B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자식의 이른 죽음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충격과 상실일지, 타인이 쉬이 위로를 건넬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였던 것 같다.


네 걱정은 누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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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외국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언니에 대해서 우리 가족보다 현지의 친구들이 더 잘 알았다.

언니가 한국에 온 초기에 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언니가 서울에 직장을 구하고, 약을 중단하면서 다시 위기가 왔을때,

나는 언니의 주변인들의 연락에 지치기 시작했다.

"어, 그렇게 하시면 안될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00병원은 알아보셨어요?"


나는 이 연락들에 답하는것이 점점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 시기에는 엄마의 전화마저 나에게는 피곤한 것이었다.

"언니는 어때?"

"네가 한번 들여다봐봐.."

"네가 언니 원룸에 다시 한번 가보면 안될까?"


은연중에 "내 걱정은 누가해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이미 무너질 듯 위태한 상황인데다, 부모님도 모두 뒷바라지로 힘들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응석받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지쳐가는 마음을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알아채주었다.

내가 언니일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면, 마지막에 꼭

"그런데 나는 네가 걱정돼. 너는 괜찮은거야?"라고 내 걱정을 해주었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아,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구나...'

친구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언니의 건강보다 나의 상태였다.

그리고 나를 더 우선시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가족도 자신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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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증의 경우 1-2년 만에 좋아질 수 없다. 3-4년에 걸친 장기레이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가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언니의 친구들이 초기에 빠르게 알아차리고 가족인 우리에게 연락을 해준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잦은 연락이나 관심은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요소였고, 그 에너지를 언니를 케어하는 데에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가지고 있는 고마움과는 별개로, 과감하게 언니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 케어를 하느라, 가족들은 자기 안위가 후순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단기간에 좋아지는 것이 아닌 만큼, 인내심과 에너지를 한번에 다 소진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힘들면 "나도 힘들다."고 말해야한다.


얼마전 누가 나에게 인복이 많다고 했는데, 나는 이 시기를 떠올리며 주저없이 맞다고 말했다.

만약에 친구가 가족이 아파서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다면, 가끔 그 친구의 안위를 묻자

묻는 것만으로 조금 괜찮아진다.


반대로, "이렇게 될때까지 가족들은 뭘한거야?"

이 말만큼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무책임한 말이 없다.

남들은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런 말을 듣지 않아도, 우울증 환자의 가족들은 죄책감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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