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08. 2021
친구나 지인에게 연애상담을 하면
항상 기대하는 그 정도 수준의 조언이 돌아온다.
"밀당을 해야지."
라거나
"네가 먼저 밥먹자고 해봐."
라거나..
사람들은 보통 연애를 한다.
아닌 사람도 짝사랑은 한다.
그렇게 나이가 들다보면 연애에 대한 관점도 생기고 경험도 쌓여서
남에게 곧잘 조언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연애가 100명 중에 1명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연애를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까?
지인이나 친구에게 상담을 해보아도
아마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나는 안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유난히 상황에 대한 이해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본인이 겪지 않은 일도 마치 겪은 사람처럼 조언한다.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는 일,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들으면
부담을 느끼거나 피상적인 응답밖에 하지 못한다.
기분장애/정신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특히 환청, 망상처럼 정신병적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한사람을 정말 찾기 어렵다.
우울증이야 요즘 많이 오픈하는 분위기이지만,
내 경우에는 언니의 증상이 심각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한명도 찾을 수 없었다.
환청·환각·망상과 같은 ‘정신병적 경험’을 전문용어로 PEs라고 하는데, 이러한 PEs를 평생 한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 한국인구의 3.3%로 추정되고, 그 중에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한 몫을 딱 잘라 말할 국내 추정치는 없다. 관련 자료로 합리적으로 추정하면, 연간 임상적 정신병장애에 따른 환청·환각은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가 안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므로 PEs를 직접 겪은 사람이 한국에서는 100명 중에 1명이라고 말할 수 있고, 간접적으로 경험한 가족까지 계산해서 넣으면 100명중에 3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자료]
대한생물치료정신의학회지에 2020년에 게재된 한 학술 논문에 따르면, 일반인구조사에서 평생 PEs를 경험하는 수치는 3.3%이다. 여기에는 일시적인 경험이 포함되어있고,
다른 논문에 따르면, 조현병·유사 정신병장애의 12개월 유병률이 약 0.48–0.66% 정도이다.
정신병한국의 평균 가구원 수는 최근 통계에서 2024년 기준 약 2.2명으로 공표되었고, 2025년에도 같은 수준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대략 100명 중의 3명 정도라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 주변에 있고, 100명중의 3명이면 꽤 많은 숫자이다.
한국 인구를 최근 약 5,150만 명으로 잡으면, 그중 3%는 대략 150만명이나 된다.
게다가 이런 정신병적 증상은 경험을 과소보고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경험에 대해서 듣기가 어려울까?
사람들이 숨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의 수도 적은데다
그걸 나누는 사람은 더더욱 없으니 PEs로 인해 곤란한 사람은 주변에 문제를 나누기가 더욱 쉽지 않고, 홀로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내 주변의 친구들, 지인을 탈탈 털어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발병으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조언을 구하고 싶은 내용도 더 복잡하고 어려워져서
결국에는 전문성을 가진 의사나 상담사에게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릿속에는 언니에 대한 고민과 걱정, 불안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는 별로 없게 되어서
모임을 가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한숨을 쉬곤 했다.
한마디로,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다.
실질적인 조언은 전문가에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상처받은 내면은 그 상처를 자꾸만 말해야 극복할 수 있다.
말할수록 객관화가 되고 절망하지 않게 되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진심으로 내 걱정을 해주었다.
그게 무엇보다 고맙고 힘이 되면서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때마다
친구들을 당황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는 만큼의 이해를 받기도 어렵고
괜히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점점 말을 꺼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토마토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스파게티의 종류는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토마토가 잘생기고 싱싱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스파게티 면이 얼마나 맛있엇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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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아픈 이후로
나는 가끔 내가 영화속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번째는 언니가 던지는 물건을 맞으면서 길거리를 걸어다닐때였고
두번째는 오늘 멀리서 다가오는 커다란 소방차를 보았을때이다.
그 소방차에서 내린 두꺼운 옷을 입은 소방수가 언니의 집 문을 열어주었다.
언니는 내게 못된 말만한다.
언니는 내게 짜증만 내고 소리만 지른다.
언니는 내게 신뢰가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오늘 들은 어떤말보다도 그 말이 가장 오래남았다.
경찰은 언니가 자해의 위험이 없다고 했다.
결국에는 10명이 넘는 사람이 출동했다가 다시 돌아갔다.
나는 커다란 사이렌을 달고, 구급차 하나를 뒤에 달고
달려오던 소방차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을 것 같다.
엄마랑 아빠랑 나는
현관 문앞에 서서 119를 기다리면서
아무말도 못했다.
올바른 선택을 한건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의연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내 탓일까? 내가 잘못판단한걸까?
돌발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상황이 위험한지 아니면 좀더 두고봐도 되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언니를 대하는 내 일상은 그 사이의 줄타기같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행동해야하고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면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 결국에 그 줄에서 떨어져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신중했어야했나,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 신중해야하지
오늘 잘한 선택도
내일 언니가 약을 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나는 언제까지 신중하게 줄타기를 해야할까
이 줄타기가 의미가 있을까
결국 또 무너지게 될 모래성을
계속해서 쌓고 있는 느낌이다.
어차피 무너질거 대충쌓고 말지.
그런 무기력함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다.
파도가 오지 않는 모래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옆에서 같이
모래라도 모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솔직히 힘들다.
괜찮지 않다.
많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