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증상중에 가장 먼저 두드러진것은
문장의 어그러짐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현학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언뜻 현대시처럼 보이는 글을 적기 시작한다.
일상 생활의 대화에서는 티가 잘 안난다.
글도 짧게 쓰는 글에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긴 글, 산문같은 것을 써보라고 하면
그야말로 번역투, 현대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지 않고, 주제가 정해져있지 않고
생각이 여기저기 날아다닌 다는 기분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은 글이 틀어져있다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다.
가끔 영화같은 데서 조현병 환자들이 방안 가득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을 적어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글이 종이에 적혀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종이를 넘어서 벽이나 물건에 까지 적게되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주체할 수 없기 때문에...
언니의 이런 증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독일에서 건너와 함께 자가격리를 하던 때이다.
언니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서 나에게 몰래 보여주려고 했다.
읽은 후의 감상은 "그들"에게 들켜서는 안되니 말로 하지 말라고 했다.
어디선가 환상에 동조하는 것은 이런 증상을 더 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봤는데
내가 언니의 생각에 논리적인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면
언니가 나를 믿어주지 않을 걸 알았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나는 너를 믿어. 하지만 너는 병원에 가야만 해"라고 하는 모순된 이야기를
2주의 격리 기간 동안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동안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의 흐름을 들어주기가 힘들고 지쳤다.
결국 언니는 나를 믿지 않게 되었고
나는 눈물로 호소했지만 언니는 듣지 않았다.
우울증 환자가 병의 자각이 없는 것이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특히 고집이 센 경우에는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2주가 지나기 전에 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된것은 "병원에 가지 않겠다, 나는 문제가 없다"는 언니의 태도 말고도 한가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자가격리 기간에는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
언니는 명확한 정신적인 증상이 있었음에도 2주 동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 떴지만, 거듭된 나의 전화에도 답변은 똑같았다.
"위급상황이 아니라는것"
나는 "그 누구도 2주 동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자가격리 시스템에 환멸을 느꼈다.
신체적인 위급 상황만 위급 상황인것인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은 자신을 해할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작은 집에서 증상이 악화되고 있는 언니와 항상 함께 있어야했다.
계속 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는 점점 더 장황해졌다.
결국 2주가 다 지나가기 전에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
나는 지금은 그것이 언니가 스스로 얼마나 힘든지 표현하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는 언니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신체에 날붙이를 대었다는 사실에 나의 불안은 증폭되었다.
다음엔 어디에 손을 댈지 혹시 자해를 하지 않을지 두려워졌다.
좀처럼 끝날것 같지 않던 2주가 지나고,
결국 언니가 병원에 간건 엄마의 감정적인 호소 때문이었다.
언니는 병원에 가면서도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