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회전문

2021년 7월 13일 일기

by writeNow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의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 써버린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떠맡은 느낌이다.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언니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벗어나고 싶은 대상이 본인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거겠지.

지금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좋은거라고 생각했다.

도와주는 것은 좋은 것이고, 상대를 더 좋게 하는 것이고

도움은 주는 것이지 교환하는게 아니다.

댓가로 무언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숭고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를 보면

더 이상 도와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비현실적이라서 자꾸만 내가 이야기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니.

잘못은 모두 내가 한 것이된다.

나는 쓸데없이 걱정이나 하고 찾아오고 집착하는 귀찮은 가족의 역할을 맡았다.


짜증을 들어도 나는 짜증을 낼 수가 없고

울고 싶어지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그만두고 싶어진다.


정신적으로 아픈 가족을 도와준다는 것은 이런것이다.

환자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면

나머지 가족들은 물건을 맞으면서 쫓아간다.

시야에서 놓치면 영영 사라질까봐 겁이난다.

유리로 된 공을 대하듯 한다.


그 순간에는 걱정되는 것이 오로지 언니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취급을 당하고 소리지르는 사람을 상대하고

떨어진 물건을 주워내는 동안에

가족들의 마음속 유리공 하나씩 깨어지고 있다.


남몰래 그리고 나몰래 깨어져서

나중에 문득 가슴이 아프고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 전까지는 걱정할 것이 나밖에 없었다.

나는 제멋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가는 말괄량이 삐삐 같이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회전문이 한번 돌았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역할을 맡았고

그나마 어른스럽고 믿을 수 있는 자녀의 역할을 맡았다.

이제는 그전으로는 도무지 돌아갈 수가 없다.

엄마도 아빠도 걱정하는 것은 언니 뿐이다.

언니를 자꾸 잘 돌보아주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누가 돌보아주지?


언니는 병아리 모가지를 잡듯 내 일상을 잡고

쥐었다 피었다 할 수 있다.

절연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픈 사람이고 걱정되는 사람인 동시에 너무나 밉다.


하지만 엄마는 언니없이 살 수가 없다.

엄마는 언니가 사라지면 무너질 것이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가족을 모두 잃을거라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의지할 곳이 없어질거야."라는 불안함에 잠에서 자꾸 깬다.


나는 남자친구가 이런 시기에 나를 떠날까봐 무섭다.


요즘같아서는 누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하면

덥석 좋다고 할 것 같다.

바위같은 튼튼한 사람에게 의지를 하고 싶다.

정신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에게 나를 돌보는 역할을 주고 싶다.

아무 의심없이 방심하면서 나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재미가 없어도 되고

맛집을 몰라도 되니까

건강하고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나를 돌보는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

견고한 일상과 큰 손, 넓은 어깨를 가진 사람이

나를 꼭 안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네가 힘들겠다고 내 걱정을 해주면 좋겠다.

따듯하게 위로해주는 말에 눈물이 나서 울면

내 콧물 눈물 닦아주면 좋겠다.



그림 일기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일기를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 승화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이 날도 느꼈던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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