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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y 29. 2024

대영제국의 해외 영토 지브롤터

스페인의 자치 도시 세우타


배턴루지에서 지브롤터까지 약 4,500해리를 평균 14노트의 속력으로 2주 만에 도착했다.

선주는 지브롤터 항에서 기름과 물, 주부식을 가능한 한 많이 싣고 흑해의 러시아 부동항 노보로시스크로 가라고 연락이 왔다.

러시아는 요즘 가뭄과 곡물 생산량이 많이 떨어져 식량난에 난리판인 모양이다.

그러니 여기서 많이 실으라는 이야기겠지.

그럼, 벙커링과 급수하는 동안 잠깐 상륙 나갈 수 있겠네.

긴 항해 끝에 처음 가보는 외국 땅을 밟고 이국 사람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 마도로스의 즐거움이려니...

게다가 지구 위의 반이라는 여성 동무를 오랜만에 보는 행복도 있으렷다.

보물선을 쓴 작가 스티븐슨이 '길 가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이 5파운드 금화를 줍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다.'라고 말했단다.

어쩌랴, 조물주가 그리 만든 것을...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단편집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말년에 썼다.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 미하일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몬 가족과 살면서 세 가지 진리를 게 된다.  

미하일은 세몬과 그 아내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으며 인간 내면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번째로 사람은 미래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보니 죽을 사람이 1년을 신어도 망가지지 않는 구두를 주문하는 부자 고객을 보면서 인간은 죽음을 미리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번째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으로 주변의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를 잃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부인을 보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도 또 사랑이네...

톨스토이가 전하는 가난하지만, 소박한 서민의 삶에 대한 애정과 사랑의 가치는 마도로스에도 유효할까?

지나가는 과부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밥만 묵고살 수 있소?"


지브롤터 외항에 많은 화물선이 정박해 있었다.

포트 컨트롤의 지시대로 G7 묘박지에 투묘하니 대기하던 급유선과 물배가 본선에 붙는다.

입항 수속은 간단히 끝나고 주문한 주부식이 한가득 실린 배도 선미에 접근한다.

얼른 마치고 통선 타고 상륙 나갈 생각에 정신없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땅이나 300여 년 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영국이 점령했다.  

영국의 해외 영토로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속령으로 상징적인 총독을 두어 국가 원수인 영국 국왕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

전략적 요충지인 이 지역을 영유한 영국은 대서양으로 오갈 수 있는 지중해의 입구를 장악, 해상권이 막강해졌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자기 땅을 찾으려고 봉쇄도 하고 돌려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지브롤터 주둔 함대만으로도 스페인 전 함대를 상대하고도 남는 영국의 막강한 해군력에 꼼짝 못 했다.

육상으로 군대를 보내려 해도 돌산을 올라가기도 힘들고, 산 위 영국 기지에서 돌만 굴려도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좁은 해변 길로 병력을 보내는 것은 손자병법이 아니라도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다.

천상 공군이 공습해야 한다는 말인데 글쎄 전면전까지는...

또한 주민들 절대다수가 스페인으로 귀속되기를 거부한다.  

영국에선 스페인의 요구에 '그럼 너희도 모로코 땅에 있는 세우타와 멜리야를 돌려주라'라고 맞대응을 하나 다 말장난이다.

그리고 내 장담하지만, 만에 하나 스페인이 세우타를 돌려줘도 영국은 절대 지브롤터를 스페인에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이권을 준다면 모를까...


주민들은 스페인이나 영국 본토에서 온 이주민이 아닌 삼백여 년간 뒤섞여 산 여러 민족 집단으로 이루어진 지브롤터인이 대부분이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안의 작은 영국이라 불린다.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가 곳곳에서 들리고 화려한 이층 버스가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이곳이 대영제국이라는 것을 알리듯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 부스 그리고 유니언잭 문양이 천지에 보인다.


상륙 나가 미니버스를 타고 항구 어디서나 보이는 426m 높이의 지브롤터 바위산에 올랐다.

왼쪽으로는 지중해가 오른쪽으로는 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모로코 땅이 보이고 수많은 선박이 지브롤터 앞바다를 분주하게 지나고 있어서 장관이다.

여기는 자유무역항에 면세 항구라 술, 담배 그리고 향수 등이 아주 싸다.

스칸디나비아 삼국이나 덴마크에서 맥주 한 잔에 5불 내고 마시던 것을 여기 노천카페에서는 50센트면 된다.

시간 여유만 있으면 카페에 죽치고 앉아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오가는 예쁜 사람만 구경해도 눈요기하며 멍때리기에 아주 좋다.

 

인구 3만의 지브롤터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장이 있다.

2009년 미스월드 대회에서 왕관을 쓴 케인 알도리노가 지브롤터 부시장을 거쳐 시장으로 취임했다.

그녀는 시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역대 최연소 시장이 되었다.

병원 행정 직원으로 일했던 그녀는 영어와 스페인어 두 나라말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있는 세우타와 멜리야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350여 년 전에 포르투갈을 통치한 스페인의 영토가 됐다.

모로코가 립하기 삼백여 년 전 일이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지브롤터와 마찬가지로 지중해를 오가는 관문 항구이다.

유럽으로 가는 아프리카 밀입국자들의 통로이기도 하다.

모로코가 세우타와 함께 멜리야의 영유권을 주장하나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하듯이 스페인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게 우리 개념으로는 부산 태종대에 중국이나 일본 사람이 깃발 꽂고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비슷한 거 아닌가?

미국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를 안 돌려주듯이 세계는 아직도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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