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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r 25. 2024

칠레 이끼께항과 모비딕



까야오 항에서 상륙 나갔다 오니 하역이 끝나간다.

대리점 직원이 독일 본사에서 텔렉스로 보낸 용선 계약서를 갖고 왔다.

가까운 칠레 이끼께 항에서 비료를 싣고 브라질 비토리아 항으로 가란다.


칠레는 한때 초석 비료 최대 수출국이었다.

정어리 황금어장에서 배불리 먹은 갈매기의 배설물오랜 세월에 걸쳐 육지에 침전되어 만들어진 천연자원인 초석은 비료와 화약의 원료로 쓰였다.

당시 유럽은 늘어나는 인구로 식량난이 심각하였다.

초석은 비료로서의 가치가 커서 칠레 경제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화약의 원료로서 초석의 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군은 칠레의 초석이 적국인 독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상을 봉쇄하였다.

화약을 더 만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독일은 오랫동안 버텼다.

그 까닭은 초석 없이도 화약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과학자는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질소를 합성하여 화약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나중에 많은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화약과 함께 질소 비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볼리비아, 뻬루 연합군과 칠레 간의 초석 쟁탈 전쟁이라고도 하는 남미 태평양 전쟁으로 뻬루는 이끼께 항을, 볼리비아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인 안토파가스타 항을 칠레에 빼앗겼다.

벌써 백여 년이 지났지만, 볼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이 땅이 자기네 땅으로 남아 있다.

초석이 없었다면 아타카마 사막과 태평양 연안의 안토파가스타 항은 여전히 볼리비아의 영토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현재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이지만 언젠가는 바다로 나갈 생각으로 티티카카 호에 해군과 군함이 훈련하고 있다.

칠레는 초석으로 인해 일어난 남미 태평양 전쟁 이후 볼리비아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반도 파지 못한 초석과 구리, 리튬 광산 등을 갖게 되었다.

칠레는 구리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구리가 많이 난다.


칠레는 길이가 서울 부산의 열 배인 약 4,300km로 매우 긴 나라이다.

길다 보니 다양한 기후를 보이며,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이 있다.

국토 가운데는 여름은 기온이 높고 건조한 건기가 지속되고, 겨울에는 다소 따뜻한 우기인 지중해성 기후이다.

남쪽에는 눈이 많이 오고 아름다운 피오르, 빙하가 있다.

엄청나게 긴 해안선에서 다양한 수산물이 연근해에서 잡힌다.

홍어는 대부분이 칠레산이라고 한다.

요즘은 칠레에서 너무 많이 잡고갈되어 뻬루,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산이 들어온단다.

현지에서는 거의 먹지 않고 버리는 물고기였으나 한국으로 수출하면서 효자 생선이 되었다고 한다.

칠레와 뻬루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훔볼트 오징어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수입한다.

바로 잡은 것은 염화암모늄 냄새 때문에 먹기가 힘들고, 가공해서 젓갈, 진미채 등으로 유통한단다.

흔히 말하는 대왕오징어와는 다르다.

우선 크기부터 훔볼트 오징어 성체는 1~2m에 50kg 남짓하나 대왕오징어 큰 놈은 20m 가까이 된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에서 정박 중에 대왕오징어 여러 마리를 잡은 적이 있는데 고약한 냄새가 나는 데다 쓰고 질겨서 먹을 수가 없었다.

질 좋은 칠레 삼겹살이 우리나라에 많이 수입된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돼지 삼겹살로 베이컨을 만들어 먹는 정도이다.

남아도는데 한국인이 잘 먹으니 이것 또한 한국으로 수출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많이 소비되지 않는 등심, 후지는 외국에 수출한단다.


브라질은 대두, 옥수수 등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 중 한 나라이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비료의 반 이상을 수입한다.

브라질에 비료공장 하나 차릴 수만 있으면 노가 나겠다.


자동차와 중장비를 다 풀어주고 'HAPPY LATIN' 호는 한바다로 나왔다.

비료를 실으려고 더러워진 덱을 물청소하고 카 덱을 올려 선창 밑에 고정했다.

이틀 정도 항해하면 이끼께 항에 도착한다.


날씨가 맑을 때 한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보인다.

이런 바다색을 네이비 컬러라고 한다.

해군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멀리 헤엄치는 돌고래 떼와 숨 쉬러 나와 큰 물살을 일으키는 커다란 고래도 보인다.

고래가 뛰는 이유는 부레가 없는 포유동물이기에 숨을 쉬기 위해 올라오고, 동료들과 교신하고 기생충이나 따개비 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란다.

항해 중에 큰 고래는 어쩌다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알던 백경이라는 소설은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인데 대표적인 미국 문학 중 하나라고 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바가본도이자 마도로스였던 멜빌은 남태평양에서 고래 작살잡이 배 선원으로 일하면서 식인종도 봤고 배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모비딕을 썼다.

19세기경 칠레 모카 섬 인근에 난폭하기로 악명 높은 향유고래가 있었다.

일반 고래와는 달리 포경선을 보면 도망가지 않고 꼬리지느러미나 몸통 박치기로 배를 공격하여 침몰시키기도 했고 몸길이는 20m가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오래전 보안사령부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서울대학교 근처 신림동에서 운영했던 카페의 이름이 모비딕이었다.

관리 장교는 카페의 지배인으로 사병은 웨이터로 근무하는 등 보안사 관계자들이 직접 운영하며 정보를 수집하였다.

하지만 언론의 추적으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방부 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고 보안사는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미국의 스타벅스는 모비딕에 나오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멜빌은 어떻게 고래에서 철학을 보았으며, 향유고래를 생각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소설 중 하나인 '모비딕'을 썼는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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