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아홉의 문자 보내기
앞 동에 엄마가 사신다. 올해 여든아홉.
십 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마음 다져가며 살고 계신다. 혼자되신 후 엄마는 그래도 나름 바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수요일엔 사군자 치러, 목요일엔 한문서예, 금요일엔 성당 노인대학. 사군자는 여든둘 되신 해에 '정말 하고 싶은 거지만 이제 와 무슨~~' 하면서 망설이시는 걸 강요하다시피 근처 평생학습관에 모시고 가 등록해드렸다. 2년쯤 지나니 경연에도 나가시고 최고령자이면서 열심 회원으로 박수도 받으신다. 그런데 느닷없이 터진 코로난지 뭔지 때문에 엄마의 바쁘고 자랑스러웠던 일상은 그대로 멈춰버렸고, 매일 지루하고 불안한 마음과 격렬히 투쟁 중이시다.
연하장으로 쓸 테니 난 몇 장 쳐주세요 하고 받은 그림
코로나 시대를 겪다 보니 이렇게 하던 일을 못하게 되는 게 있나 하면 안 하던 일을 하게 되는 일도 생겼다. 말일이면 집집마다 검침원이 와서 챙겨가던 도시가스 사용량을 집주인이 직접 휴대폰 문자로 보내야 하게 된 것도 그 일 중 하나.
문자를 못하는 엄마는 할 수 없이 전화로 해결하시면서 몹시 자존심이 상했던 듯 싶었다. 거기다가 서예 배우던 곳에서 은근 엄마를 챙겨주시던 아저씨가 보낸 안부 문자에 답을 못하는 것도 마음 상하고.
'간절한 필요'는 효과 최대치의 동기 부여가 된다. 그래서 난 그동안 수없이 되풀이해도 허탕이었던 휴대폰 문자 가르치기를 다시 시작했다. 메시지 아이콘을 찾아 들어가고 자판을 불러내고 하나씩 눌러 글자를 만들어내고~~ 그런데 열심히 들여다보며 따라 하던 엄마의 일갈, "배우면 뭘 해. 보낼 일도 없고 받을 일도 없는데! 내일이면 다 까먹을 걸!"
정말 그렇다. 십 년 가까이 영어 학원에 들락거렸지만 '굿모닝!' 도 쉽게 안 튀어나오는 건 내가 미국 사람이랑 영어 할 일이 없어 그런 거니까(하고 우긴다). 그래서 난 엄마랑 아침마다 문자를 주고받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받은 문자가 바로 이 것.
엄마가 내게 보낸 첫 문자다. 엉성하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다 알아볼 수 있으니, 성공!
이렇게 두어 달 째 아침이면 엄마랑 문자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엊그제 받은 문자는 바로 아래.
이런 기다란 문자라니~~ 일취월장!
집안일에 매번 열외 시켜주는 외아들이 이사하느라 지친 게 안타까워 수족처럼 부리는 딸에게 하소연하는 만행의 문자라는 것과는 별도로 칭찬해 드릴 만하다.
그런데 좀 걸리는 게 있다. 살뜰히 엄마를 챙겨드리는 서예반 아저씨께는 어떤 답을 보내셨을까? 물론 한참 연하시고 성당에서 만날 때도 나이 많으신 어르신에게 잘해드리려는 마음이 한 눈에도 보였는데 엄마는 답장 안 보내느냐고 내가 대신 자판 쳐드리겠다는 걸 마다하시며 슬쩍 '나중에~' 하고 미루고 마셨다. 내용이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