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 중
생각의 자유로움은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정확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생각은 문자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내 생각의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이고, 생각은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고,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생각의 한계를 한정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당연히 어떠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는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끝없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문장을 읽고 정확하게 생각의 범위가 어떻게 문자의 한계로 정해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꿈을 많이 꾼다. 어릴 때는 더 자주 꾸었던 것 같다. 가까운 경험을 꿈에서 볼 때도 있고 너무다 황당한 꿈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꿈이란 것이 꾸게 되는지 그 한계를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꾸거나 알지 못하는 것을 꾸지 않는 것을 안다. 언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내가 모르는 언어로 꿈꾸는 경우는 없다. 상대가 말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꿈을 꾸지는 않는다. 어렴풋이 내가 모르는 말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그 소리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꿈도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을 꾸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생각지도 않은 옛날 경험들을 생각나게도 하고 예지몽들도 있겠지만 언어적인 것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아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다 보면 알지 못하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 나의 생각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 물론 글로 쓸 수없다. 그 관계를 보면 쉬이 이해된다. 모국어는 그 관계를 살피기도 전에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었다.
꿈처럼 생각도 그런 한계를 가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생각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니 언어적 인식의 전환을 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으로 받아 들 일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결론이면 생각을 깊이 있고 넓게 하기 위해 그만큼의 문자사용능력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