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한 책 - 첫 번째 이야기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by 리안


나를 살게 한 책 - 첫 번째 이야기



가장 처음으로 고른 책은 이슬아 작가의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다. 이 책은 총 17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 대한 책'이다. 처음에는 이슬아 작가가 읽는 책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정말 큰 위로를 받았고, 온통 밑줄과 생각을 적은 기록들로 가득해졌다. 물성이 있는 책의 장점은 이렇게 나만의 메모와 생각을 남기고 다시 펼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생각과 나의 메모가 쌓여서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 되는 일을 좋아하는데, 어떤 책에는 내가 남긴 메모가 유치해서 펼쳐보고 싶지 않은 때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에 남긴 쪽지들은 여전히 유용해서 메모를 중심으로 서평을 남겨보려 한다.


1.

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울다가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봤어. 아침이면 일어나고 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 바랐어. 왜냐하면 나는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 지거든. 일도 하고 너랑도 놀아야 해서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몰라. (17쪽)

17쪽에 적힌 문장을 읽고 나서 한참이나 다음 페이지를 읽지 못했었다. 네가 살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내 욕심 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섬세하고 다정한 말에 글 속의 청자(너)가 부러웠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나의 엄마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엄마는 언젠가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라는 물음에 "엄마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엄마의 삶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삶이 원래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엄마라면 삶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정말 힘들 것 같다고,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나에게 용기가 있었다면, 편지를 써서 17쪽에 끼워서 함께 전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냥, "여기에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면서 이 책을 건넸다. 나중에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 것 같다고 했지만, 정말 내가 전달하고 싶던 말이 온전히 전해졌는지는 확신이 없다.


17쪽에 이어 20쪽에도 클라이맥스와 같은 문장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꼭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지만, 이 책에 있는 글들은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하게 단어와 공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감동을 파괴할까 걱정이 되어 함부로 문장을 옮기기가 어렵다.


2.

가끔은 이렇게 또 말하겠지.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오늘은 나 역시 그 말을 내뱉은 하루였어. 태어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지 뭐야. 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태어나서 참 좋다고 말하는 날이 또 오게 될 것을 알아. 시인 쉼보르스카가 말했듯 두 번은 없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28쪽)

28쪽의 문장에 남긴 메모는 법정 스님의 책에서 본 구절이다.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에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 법정, 『일기일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은 딱 한 번뿐이고, 돌아오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상투적인 내용일 수도 있지만, 법정스님과 이슬아 작가의 글로 읽으니 곱씹어 생각하게 됐다. 매일 기쁠 수는 없지만, 매일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모든 순간은 한 번뿐이니 지금 여기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3.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보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 너는 이해하니? 너나 나나 그 원동력으로 이야기를 출발시키지는 않지. 복수심을 가지고 쓰는 건 참 위험하니까. 하지만 너무 이해할 수 있지 않아?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내 이야기로 데려와 보겠다는 마음 말야. 지금은 내가 비록 이렇게 참고만 있어도 언젠가는 당신에 관해 신랄한 픽션을 완성해주겠다고 이를 가는 마음 상상할 수 있어. (34쪽)

34쪽의 문장 아래에는 방송에서 본 문구를 적어 놨다.


저희는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 버려요.

만약 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너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일 거예요.


- 이옥섭 감독, 서울체크인(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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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운 사람이 생기면, 그냥 사랑해 버린다는 이옥섭 감독의 이야기와 '저 인간을 언젠가 내 소설에서 써야지'하는 생각들이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소설가도 아니고, 아직은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 실력이 없어서 나에게는 적용이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방송인 이영지의 트위터에서 나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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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워진 슈크림 붕어빵 냄새를 상상하는 일, 나에게 아픈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


여기에 더해 방송인 이영지의 영상을 찾아보는 방법도 있다. 유튜버 문상훈과 쏘이가 소개한 비슷한 방법도 메모해 두었는데, 지금도 나만의 도피처로 사용하고 있다. 문상훈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좋아하는 코미디 시리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삶에 기여하고 싶어서 빠더너스를 시작했다고 했다. 꼭 코미디가 아니더라도 소설이나 시 혹은 영화를 보는 일도 도움이 된다. 여행유튜버 쏘이는 화가 나면 일단은 무언가를 먹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 의외로 몸이 힘들어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잠깐의 시간이 분노를 삭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4.

이 말 너무 놀랍지 않아? 예순다섯인데 한 오백 년은 산 것 같다는 말. 여러 개의 생을 마음속에서 아주 많이 리플레이했기 때문은 아닐까. 잔뜩 차오르고 웅성겨려서 더 이상은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봐. (36쪽)
이 책을 통해 나는 슬픔을 다시 배워. 그들이 슬픔으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을 해냈는지를, 그러므로 어째서 보존되어야만 하는지를 알게 돼. (47쪽)

36쪽과 47쪽의 밑줄 아래에는 '내가 계속해서 공부하고 소설과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라고 기록했다. 어쩌면 나는 이 두 문장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17쪽에서 이슬아 작가가 말했던 "살고자 하는 더 중요한 이유"를 점점 찾아나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슬프고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만들기 위해 '나' 그뿐만 아니라 '너' 역시도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슬아의 다정한 위로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추신

나만의 메모를 남기며 읽기 좋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간결하고 흡입력이 있어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부족하지만 서평이 부디 유용하기를 바라며 첫 번째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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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저자이슬아 | 출판 헤엄발매 | 20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