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년의 고독: 인류의 이동과 지역의 탄생, 윤신영 과학기자
두산아트센터에서 주최하는 인문극장은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선정하고 주제에 걸맞은 8개의 강연과 4편의 공연을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5년의 테마는 '지역(LOCAL)'으로 마침 관심 있던 분야여서 더욱 반가웠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8편의 강의들을 들으며 '지역'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자 강의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강연 프로그램의 목차를 보면 '지역'이라는 주제에 대해 정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 지역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로컬푸드', '이주민', '지역청년', 그리고 '지방소멸' 등 쉽사리 연결이 되고 어느 정도는 뉴스에서 들어봤던 문제들이어서 공감도 됐다. 그런데 1강의 제목인 "1만 년의 고독 : 인류의 이동과 지역의 탄생" 강의는 이게 도대체 지역이랑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또 과학이라면 문외한이라 그런지 1만 년 전의 이야기는 별로 와닿지 않는 제목이었다.
1강의 연사인 윤신영 과학기자는 강의의 서두에서 본 강의 의뢰를 받은 후 "지역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정의를 탐구했다고 말했다. 연사의 질문을 듣고 보니 정말 '지역'이란 게 무엇일까? 고심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동시에 한 가지 명료한 정의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강의를 듣기 전에 품었던 질문인 "과학과 지역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였는지를 깨달았다.
또한 연사는 지역이라는 개념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고 하며, 지역이 바뀌면 다른 종들은 진화해서 다른 종으로 바뀌고, 생물종의 갈래가 나뉜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문화의 힘으로 생물학적인 진화를 뛰어넘었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지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동안은 지역이라는 주제에 대해 '지방소멸'이라던가 '로컬푸드'와 같이 사회문제나 어떤 고장의 특색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간종이 공유하는 개념이자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의 먼 조상들이 살아왔던 터전, 생태계, 지구자연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아주 크고 방대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지역이 행정적 구분단위인 시와 도 만으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과학자들의 시선에서 지역은 행정적 구분보다 어쩌면 기후나 그 장소에 살아가는 동식물로 구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신영 과학기자도 시민과학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꽃 사진을 제보받아서 기후변화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윤신영 연사의 책 중에 그래프 자료가 수록된 기후변화에 대한 책도 있었다. 연사가 꽃 사진을 모으게 된 것은 식물은 정직하기 때문이며, 시민들에게 전국의 사진을 제보받아서 그래프를 만들어본 결과 개화시기가 50년 전에 비해 훨씬 빨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점은 제주보다 부산의 개화시기가 빠른 것처럼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지역 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구분한 행정적 단위의 구분과 다르게 식물로 본 한국의 구분은 또 다를 수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다른 지역에서 연구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이 땅의 변화에 대한 자료들을 직접 축척해 가고 이를 바탕으로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는 점도 알게 됐다.
"최초의 인류는 예술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예술수집가였다."
강의 내용 중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을 상상하게 하는 유물을 이미지로 마주했는데 그중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손바닥 스텐실 암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역'에 대한 주제를 생각하면서 단 한 번도 1만 년 전, 10만 년 전에 이 땅에 누가 살았을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저 수많은 손바닥들을 보며 또 이런 손바닥들이 실은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처절한 절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유한한 삶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과거의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어딘가 먹먹해졌다.
연사는 점차 과거의 유물들이 발견되며 기존 1만 년 전에서 3~4만 년 나아가 6만 년 전에 제작된 벽화까지 발견되어 기존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기존 유럽지역(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발견되던 벽화들이 이제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예술이 오직 현생인류의 전유물이었다는 통념과 과거에는 고등미술의 기원이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기존의 관념이 깨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강의를 듣고 집에 오는 길에 두산인문극장에서 이번 주제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여러분의 지역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 이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이지만, 첫 번째 강의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은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역에 대한 생각들이 정말 표면적이고 지엽적이었다는 것이다. 1만 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의 사람들이 이 땅에 손바닥 스텐실을 남기고 간 것처럼 나는 어떤 기록과 무엇을 이 땅에 남기고 가게 될지 또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으로의 강의를 들으며 넉넉히 고민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