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지역] <엔들링스 Endlings>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by 리안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들링스 Endlings> 연극 사진


<엔들링스 Endlings>는 두산아트센터에서 '지역'을 주제로 선정한 연극 세 편 중 하나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유명한 '셀린 송'감독의 각본이기도 하다. 연극 장르는 내게 생소한 장르이고, 극본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엔들링스는 다른 연극과는 다른 다양한 시도를 담은 작품 같았다.



두산아트센터 접근성 지원, 엔들링스에서는?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강연과 연극을 관람하면서 이 공간에서 만큼은 '접근성'의 제약을 보조하는 장치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가령 강연에서 실시간 문자통역을 제공하거나 예매일이 다가오면 필요한 접근성 수단을 신청할 수 있는 문자를 받는 등의 장치가 있었다. 그런데 <엔들링스 Endlings>는 두산아트 센터에서 진행된 여러 행사 중에서도 돋보였다.


다음의 내용은 엔들링스 프로그램북 중 <텍스트, 자막해설 디자인노트>의 일부다. 프로그램북의 전문은 다음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엔들링스 프로그램북 중 <텍스트, 자막해설 디자인노트>의 일부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들링스 Endlings> 연극 사진


디자인노트에 담긴 고민들은 사진에 보이는 바와 같이 나타난다. '뽀글뽀글'이라는 글자와 함께 비눗방울 이미지를 활용한다거나 소리의 크기 높낮이를 시각화하여 나타내는 장면도 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들링스 Endlings> 연극 사진

접근성 지원 이외에도 엔들링스에서는 새로운 방식을 정말 많이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는 관객석조차 무대로 활용한 방법이었다. 극 중에 하영 부부가 연극을 보러 가는데 관객이 있는 자리를 지나 무대 앞 쪽에 있는 좌석에 앉아 관람하게 된다. 이런 연극은 본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관객까지도 극의 일부로 활용하는 연출은 정말 놀라웠다.


프로그램북도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해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고, 무대장치들도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을 정말 많이 해서 디자인한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다. 엔들링스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한국계 캐나다인이자 극작가인 '하영'의 이야기가 있고, 그 속에 하영이 쓴 극본의 내용이 또 하나 있다. 그 내용은 '아일랜드오브만재'에 사는 마지막 해녀 세 사람의 이야기다.


할머니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하나다. "내 팔자를 아무도 물려받지 않았으면",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자식들은 섬 밖으로 나가기를 염원한다. 극 중 하영이 할머니와 통화하는 장면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은 다만 하영의 이야기 속 인물들이 아니라 실제 하영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반영해서 극을 쓴 내용임을 미루어 볼 수 있다.


해녀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에서 언제나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만큼은 멀리멀리 가서 '해녀'가 아닌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극작가인 하영의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지막 해녀들'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우리 민족만이 가진 산물이기도 하다. 자랑스럽고 널리 알려져야 하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녀는 위험하고 고된 직업 중에 하나다. 만일 우리 엄마가 해녀라면? 할머니가 해녀라면? 가족들 입장에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이 직업을 마냥 응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들링스 Endlings> 연극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들링스 Endlings> 연극 사진


하영은 그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극본으로 쓰고, 그들의 이야기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보이려고 한다. 극 중 하영의 '백인남편(겸 극작가)'는 하영의 극본을 자신은 결코 쓸 수 없는 이야기라고 평한다. 맞다. '한국계 이민자'인 하영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마지막 해녀'인 하영이의 할머니 이야기는 '백인남편(겸 극작가)'가 살아온 소위 '서구문명사회'에서는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임이 분명하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엔들링스 Endlings> 연극 사진

그러나 바다에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염원에 따르면 해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 가족이 매일 죽음을 담보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극 중 해녀 할머니들의 "그 누구도 내 팔자, 삶을 물려받지 않았으면"하는 염원에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비극의 역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다양한 민족과 이민자의 이야기는 기억해야 함과 동시에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너무 아파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혹은 자손들이 이 아픔을 이어가지 않기를, 잊히길 바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다양한 정체성', '개인이 가진 고유함'에 대해 우리는 알고 싶어 하고 또 그러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흥미로운 이야기 소비하듯이 저 멀리에 있는 '제3세계', '아일랜드오브만재'와 같이 나와는 아주 멀고 동떨어진 신비로운 이야기로 생각하거나 유흥거리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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