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거기가 어딘데요?

주재원 아내, 그냥 드라마 속 이야기인 줄 알았다

by 시크릿져니


어릴 적 나는 해외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중학생 때 우연히 빠지게 된 J-POP 덕분에, 일본 유학생활을 꿈꾸기도 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교 4학년 때에는 1년간 오사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다.


막상 먹고 사는데에 집중하다 보니, 꿈꾸던 장밋빛 유학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어를 아무리 잘해도 나는 결국 외국인이었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하며 ‘역시 한국이 최고구나’라는 결론과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곧바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본에 대한 관심은 식었지만 이따금 저 먼 나라에서 활약하는 내 모습을 꿈꾸곤 했다. 사주를 봐도 ‘역마살’이 나왔다. 해외에서 살거나, 이와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했다.


운명이었을까? 외국계 기업 취업 후, 10년동안 본사에서 파견 온 주재원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주로 단신 부임으로 온 30대 초중반의 남성, 또는 가족과 함께 온 50대 임원들이었다. 그들은 높은 급여와 직급, 좋은 사택 등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사내에서는 그들의 아내와 국제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까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중,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회사에서 해외영업직을 맡은 그는, 업무 특성상 언젠가는 해외에서 3-4년간 근무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꽤 현실적이었다. ‘기러기 부부를 하자는 건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따라가야 한다는 뜻인가?’ 진심은 몰랐지만, 주재원 아내라는 가능성이 생긴 것만으로도 묘한 기대가 생겼다.


“주재원이요? 타지생활이 쉽진 않겠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멋있네요!”

그저, 별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날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늘, 회사에 해외 파견 모집공고가 떴어요.”


결혼한 지 6개월이 되던 날, 남편은 해외 근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30대 후반인 남편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40대가 되고, 더 높은 직급인 상태로 나가게 된다면 ‘법인장’으로서 막대한 책임과 고된 업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재원 임기가 끝나는 순서를 따지면, 후보국은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했다.


말레이시아, 미국, 중국, 멕시코, 그리고 낯선 이름의 ‘튀르키예’


우선은 파견 지원서에 희망지를 우선순위별로 적기로 했다. 남편이 1순위로 희망한 곳은 말레이시아였다. 한국과 가깝고, 주재원 가족의 복지도 뛰어났다.


1순위는 말레이시아,

그리고 2순위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남편이 튀르키예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튀어나온 낯선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튀르키예? 처음 듣는 이름 같았다. 찾아보니 아, ‘터키’의 공식 명칭이란다. 낯설고, 정보도 없고, 심지어 무슨 언어를 쓰는지도 몰랐다.


튀르키예는 지원자 수도 적을 것 같고 다른 나라보다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주재원 기간 동안 돈 모으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남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 경험뿐 아니라, ‘돈을 모을 수 있는 주재원 생활’을 원하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 대한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심 설마 그게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의견을 따랐다.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 기도했다.

동남아로 가게 해주세요 제발....!


몇달 후, 지원 결과가 나왔다.


“튀르키예로 확정됐어요. 하하...

결과는 조금 아쉽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맙소사. 설마설마 했는데 ‘터키’라니.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나의 현실은 아주 낯선 이름, ‘튀르키예’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