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기러기부부 확정인 걸까?
남편의 주재원 발령이 확정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예상보다 덤덤하셨다.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갈 때부터 남편이 직무상 반드시 해외에 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라고 말씀드리니, 예상치 못한 나라에 당황하신 듯했다. 가장 먼저 물어보신 것은 비행기로 얼마나 걸리냐는 거였다.
무려 11시간.
“너무 멀어서 어떡하니...”
거리가 멀다 보니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일 년에 많아봤자 한두 번, 한국땅을 밟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헐 대박! 튀르키예라면, 터키 맞지?”
“위험하지는 않아? 괜찮은 거야?”
예상대로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회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이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정작 가장 큰 물음표는 내 안에 있었다. 결혼한 지 겨우 6개월. 신혼집에 짐 푼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이삿짐을 싸야 하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였다.
나는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복지도, 연봉도, 커리어 경로도 흠잡을 데 없는 회사였다. 이런 직장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두기엔 아까운 곳이었다. 혹시나 해서 휴직에 관한 사규도 뒤져봤지만 역시나 해당사항이 없었다.
일단, 1년 정도는 기러기부부로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휴직을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주재원 발령이 확정된 직후, 우리는 시험관 시술을 받기로 했다. 시험관의 장점은, 내가 원하는 때에 임신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하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기러기부부로 지내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맞벌이 수입은 우리 부부에게 절실했다. 특히, 나에게 ‘일’은 단순한 월급 이상의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지금 퇴사하면 재취업이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4년 동안 떨어져 있는 건 힘들지 않을까? 오래전에 미뤄둔 결정서를 갑자기 제출하라고 재촉받는 기분이었다.
“지금 바로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우선 제가 간 이후에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아요”
남편의 말이 고마운 한편, 결정권이 오로지 나에게 주어지니 혼란스럽기도 했다.
놀랍게도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 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