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둔 '진짜' 이유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거 맞나요?

by 시크릿져니

남편의 주재원 발령 이후로, 나는 매일 퇴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무슨 타이밍에?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우리 부부가 세운 계획은 꽤나 그럴듯했다.

남편이 튀르키예로 떠나기 전, 시험관 시술로 세 개의 배아를 동결했다.

나는 한국에 남아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임신에 성공할 경우, 출산휴가를 쓰고 1년간 튀르키예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면 주재 기간의 절반쯤은 지나 있을 테고, 남편이 귀국할 때까지 맞벌이 수입도 최대한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계획을 비웃는다.


이 계획을 짜고 남편과 이야기한 지 고작 삼일 만에 나는 사직서를 쓰고 있었다. '남편 주재원 발령으로 인한 퇴사'였지만 진짜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2년 전부터 옆부서 팀장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 친한 직장 동료 몇 명도 이미 그 사람 때문에 회사를 떠났는데 무슨 영문인지 그 불똥이 나에게까지 튄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몇 번이고 그만둘까 고민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들이 나를 붙잡았다. 높은 연봉, 좋은 복지, 마음 잘 맞는 팀원들. 그동안 날 지탱해 준 것들이 그 한 사람의 말과 표정 한마디에 몇 번이고 와르르 무너지곤 했다.


그 사람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는 길. 그의 자리 앞에서, 나는 늘 한 번 멈춰 섰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비웃음과 싸늘한 시선이 먼저 날 집어삼켰다. 회의 자리에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은 항상 묵살당했고, 그럴 때마다 자존감은 조금씩 바닥으로 꺼져갔다. 그 시간만큼은, 나조차도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남편의 해외 발령이라는 핑계는, 어쩌면 내가 나를 구하기 위한 절묘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도망쳐서 살 수 있다면, 그건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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