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urney Jan 20. 2024

당신의 삶의 낙은 무엇인가요?

무엇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나요? 또는 무엇을 사랑하나요?

    밀린 회포를 풀어야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잡혔던 연구실 동기와의 점심 약속. 평소 에너지가 넘치고 이것저것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본인의 말에 의하면 굉장히 "outgoing"한 사람이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해 온 친구였다. 나와는 분명 에너지 준위 면에서 다른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일정 부분 지향하는 모습이기도 해서 그랬다. 

    각자의 자리에서 방학을 보내고 다시금 학기를 맞이해 기념하듯 가졌던 점심시간을 통해 그 애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또 놀라웠다. 그 애는 내가 보았던 사람들 중 가장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친구였다. 자기 객관화라기보다도,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말 잘 알고, 또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계속해서 써왔던 자신에 대한 기록 덕분이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감정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쏟아내고 다시 그 반동으로 올라와 외부 세계를 즐긴다는 그 애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의 경우는 어떨까. 나는 순서가 조금 달랐던 듯하다. 감정의 깊은 곳까지 내려간 나의 모습이 싫지만 어떻게든 감당해보고 싶을 때, 그럴 때 나는 배설하듯 글을 끄적였다. 메모장이나 종이, 일기 어플이나 블로그 등이 그 매개체가 되었다. 좋아하던 가수 팬카페에도 편지처럼 적어본 적이 있다. 그러고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기록들은 태워버렸다. 블로그를 닫아버리거나, 일기장을 버려버리거나, 어플을 삭제하거나. 그래서 내 기록들은 여기저기 웹상을 부유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배설하듯 쏟아내야만 했던 그때 당시를 굳이 회고하고 싶지 않아서 취했던 방법이지만, 가끔씩 돌이켜보면 아주 조금 아쉽기는 했다. 나의 발자취가 사라진 셈이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과거를 들추어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현재 내가 괜찮아질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나'에 대해서 '너무' 깊게 파고들거나 고민하는 것이 썩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고, 과감하게 그 습관을 버렸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동기 같은 사람도 있다. 그 애가 넌지시 물었던 질문을 나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곱씹는 중이다. 

언니는 인생의 낙이 뭐야?

    이 질문에 했던 답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살아가며 꼭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면 괜히 제대로 대답을 하고 싶다. 확실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 매력적이어 보이기 때문일까. 

    여하튼 나는 삶의 낙을 얻기 위해 그리 큰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맞다. 일상에서 스스로를 만족스러울 만큼 통제했다는 생각이 들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추억을 쌓고 오거나,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산 사람들에게서 멋진 조언을 들을 때면 기분 좋은 소름이 돋거나 만족감이 든다. 가끔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지칠 때면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 헤매며 주위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내 나름의 인생의 낙이라고 생각한다. 


    열정도 마찬가지이다. 경쟁이 치열했던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쏟았던 노력들의 형태가 열정이라고, 그런 형태를 띤 것만이 열정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졸업하면서 목표와 방향을 잃었을 때 내게서 그런 열정도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 느슨해진 나를 더욱 질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일정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삶을 잘 살아보고 싶어서, 또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했던 노력들이 다 내 나름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생각하고 개선하려 노력하고, 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해서 더 나아지고자 발버둥 쳤던 그 모든 것들이 내 나름대로 잘 살고 싶은 마음에 기울였던 열정이다. 이런 비정형적인 열정도 있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가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좀 더 시간이 흘러 바라본다면 이 역시도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기준을 가지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원 지원 시 준비사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