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0일짜리 여행
그 카페에서 꼬박 2년을 채웠다. 카페의 오프닝 멤버로서 거진 모든 메뉴의 레시피를 알게 되었으며 메뉴판 작업 또한 내가(재능 기부 차원에서의), 가게의 단골손님들과도 꽤나 친분을 쌓았기에 그만두기로 결심을 하고서부터는 며칠 내 마음이 헛헛했다.
보조 바리스타 겸 캐셔로서의 삶은 그렇게 오래도록 공들여온 위치였지만 기대보다 즐겁지 못했다. 글쎄, 이유는 모르겠다. 시시했던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매일이 전쟁 같았으니까. 반복되는 삶이 지겨웠던 걸까? 그것도 아니다. 일은 고되었으나 분주히 움직이는 내 몸놀림 속 손님들과의 쨉쨉이 타임이 재미있었다. 그저 나는 모르겠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고 싶었다.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의문 투성이의 내가 살아낸 나의 삶은 그래서인지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언젠가는 '아 그땐 이래서 이랬고 저땐 그래서 그랬지' 하며 내가 나의 속을 훤히 들여다봐 줄 그 날이 올까?
어쨌든. 그렇게 나는 한 달이나 남은 보라카이 여행을 핑계로 노티스(사직서와 같은 것)를 냈다.
2016년의 1월 초. 내 나이 방년 27세의 일이다.
한 달 내내 팽팽 논 나는 2월 초 보라카이로 떠났다. 친구 조디, 제나와 함께였다. 그 10일간의 필리핀 방문은 내 인생 최악의 여행으로 기록되어있다. (왜 이 곳에 적히는 나의 모든 추억들은 최악이며 실수투성이인 것인가? 대체 왜 내 삶은 평탄하지 않은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몹시 고통스러웠을뿐 전반적인 여행 자체는 나쁜 편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나는 동남아라는 나라와 맞지 않는 사람이지 싶다. 일단은 너무 습했고 또 습했으며 마지막으로 굉장히 습했다. 물속에서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2월의 동남아시아는 건기이고, 또 나름 겨울이라 생각보다 덥지 않다는 네이버 지식인 성림의 말씀을 믿고 또 믿었는데 뒤통수를 오함마로 쌔리 맞은 기분이었다. 습하고 덥기까지 한 날씨에 나는 쥐약이다.
출발 전날 조디가 나와 제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의 마닐라행 항공편은 아침 7시이니 적어도 새벽 4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하는데, 택시비 절감도 할 겸 자신의 집에서 함께 밤을 새우자는 것이 그 연락의 취지였다.
순진무구했던 제나와 나는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서 들뜬 마음으로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는 아주 즐거웠다! 간식도 먹고 티비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그러나 밤 12시, 배신자 조디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방에 들어갔고 그는 코까지 골며 숙면을 취하였다. 나와 제나는 그제야 알아챘다. 우리는 다름 아닌 알람시계 역할로 그 집에 불려 간 것임을! 조디는 이른 기상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뚜둥. 호구 둘은 남의 집 쇼파에 누워 남의 집 땅콩을 까먹으며 영화 세편을 내리 보았다고 한다.
보라카이 여행은 어느 기억 속에서는 최악의 여행이다가도 갑작스레 그립기도 하고, 필리핀 사람들에게 당한 사기 행각 역시 어떤 날엔 몸서리를 치다가도 좀 더 생각해보면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니 그럴 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필리핀 항공을 향한 극도의 혐오스러운 마음은 수 년이 지난 지금껏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그 항공기를 탑승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밤을 새웠지만 우리(제나와 나)는 이륙하고서 단 5분도 자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만 못 잤을 수도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기내는 좁고 시끄러웠으며 기체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하늘 위에서의 꿀잠을 위해 단 한숨도 자지 않았건만 첫날부터 조졌다. 앞에 앉은 조디 혼자 재잘재잘 신이 났더랬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산을 하나 넘어왔지만 알고 보니 이제야 갓 산맥을 타기 시작한, 김지윤의 보라카이 여행기(꽤나 망한)가 이제 시작된다. 기대하시라 뚜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