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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Apr 17. 2020

스물네 번째 산맥

25. 멜버른 여행



함께 떠나요


헌터밸리(와인 공장 투어), 블루 마운틴(시드니의 대표적 관광지, 산), 포츠스티븐 (모래썰매, 야생 돌고래 관광)의 일일관광은 무던히 지나갔다. 비록 헌터밸리에 방문한 날엔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일정 자체가 와인공장 투어라 전부 실내 활동이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뭐, 야외 일정이라 하면 또 어떠한가. 겨울비가 내리는 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타국에서의 와인이라니! 누군가 낭만에 대하여 묻는다면 나는 이 날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싶다.


짧디 짧은 시드니 투어의 끝이 보인다. 우리는 마지막 날 다시금 시내로 나갔다. 차이나타운 근처의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했다. 토스트 몇 쪽과 커피를 시켜놓고선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끄러운 공간 속을 부유하는 서로의 말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따끔해져 온다. 일 년은 훌쩍 흘러가 어느새 5월의 며칠이 다시 또 돌아오고 있다. 춥고 건조한 하루들 안에서 그들을 발견하는 날에 나는 또 얼마나 서글퍼질지 벌써부터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베지마이트 & 바리케이드


나는 베지마이트와 함께 토스트 한쪽을 먹었는데, <베지마이트>는 맛이 이상하기로 악명 높은 호주의 야채 잼(?)이다. 노란 뚜껑을 따 보면 첫인상은 흡사 빛깔 고운 다크 초콜릿 같으나 그 실체는 전혀 다르다. 초콜릿 퍼먹듯이 한 숟갈을 푹 먹으면 절대 안 된다. 몹시 짜고, 구리구리한 맛이기 때문이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 나 역시 냄새조차 맡기 힘들었다. 샌드위치 메이커로 일할 때 'vegemite on toast'를 시키는 이들은 정말이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어느 날 한 손님이 버터 많이, 베지마이트는 아주아주 조금만.이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실수로 두 개나 만들어버린 것. 남은 빵은 배고픈 나의 입으로 들어갔는데, 어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베지마이트 토스트에 중독돼버려 내가 바로 그 '사이코패스'가 되어있었다.


시티를 열심히 돌고 돌아 필요한 기념품들과 각종 약을 구입한 후 우리는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멜버른으로 떠나는 날이었으니 말이다. 멜버른은 호주의 유럽이라 한다. 나 역시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던 도시라 늘 궁금했었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은 아주 극명히 달랐다. 너무 우중충하고 회색빛의 도시, 추워서 싫다 라는 사람들 반, 아기자기하고 볼 것도 많고 커피가 너무 맛있는 소유럽같은 도시라고 하는 사람 반. 잔뜩 기대에 부풀어 공항행 기차 탑승을 위해 이동하던 와중이었다.


옆에 세워져 있던 바리케이드를 미처 보지 못한 할머니가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 머릿속이 아득해져 왔다. 예전에 무릎 수술까지 했던 할머니는 도저히 일어나기 힘들다 했다. 나는 역무원을 불러 할머니의 상황을 설명하고서는 휠체어를 요청했다. 역무원은 파스를 뿌린 후 얼음팩을 감아주었고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게 조치해서 할머니의 무릎을 지켜드릴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이모들이 집에 두고 온 남자들 때문에 걱정이 컸기에 멜버른 일정은 몹시 짧았다. 저녁에 도착해 호텔 투숙, 다음 날 그레이트 오션 로드 관광, 시티투어 후 저녁 비행기로 작별. 이박 삼일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따져보자면 이틀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기에 빠릿빠릿 움직여야 했다. 첫날 도착하니 거진 10시가 가까운 시간. 식당은 전부 문을 닫았기에 호텔 근처의 헝그리 잭스에서 (버거킹) 햄버거와 감자칩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호텔 조식 뷔페. 가짓수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나가야 하는 일정에 수고로움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멜버른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12 사도 바위가 있는 절벽이 그 정점이다. 이름 자체가 great ocean road이지 않은가. 가는 길이 고불고불하고 험난하긴 했어도 창밖으로 보이는 경광은 훌륭했다. 투어 가이드의 입담도 좋았고 (어른들 취향저격, 백 프로 만족!) 조금 힘들다 싶을 때쯤 내려서는 등대에 올랐고 야생 코알라를 보았고 가족사진을 촬영했고 초콜릿 공장까지 방문했기에 크게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실 12 사도 바위보다 가는 길이 더 좋았다. 아니 그냥 내 가족, 내 친척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함께 이국의 땅을 밟고 같은 바다를 향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뭉클함마저 느꼈다. 12 사도 바위를 잡아 삼키는 파도를 보며 알 수 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나면 나는 결국 무엇을 얻게 될까.

남은 몇 년이 평생의 삶 속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인가.




안녕, 안녕!


일정을 끝내니 저녁 7시쯤 됐지 싶다. 김밥과 초밥을 포장해서 가장 큰 방에 모여 양주를 깠다. 슬쩍 술이 오르신 분들께서 카지노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멜버른, 하면 대표적인 것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커피, 그리고 카지노. 멜버른까지 와서는 카지노도 안가보고 돌아가기는 아쉬운 터. 물론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만큼 크지는 않지만 아마도 호주 내에서는 가장 화려할 테다. 시드니의 카지노가 중국인의, 중국인을 위한, 중국인에 의한.이라는 느낌이라면 멜버른의 카지노는 조금 더 로컬스러운 느낌이 풍긴다. 아 물론 이 곳도 중국인이 70프로 이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들어가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2시간쯤 놀았을까? 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호텔로 향했고 다음날의 시티투어와 비행기 탑승을 위해 짐을 쌌다.




멜버른은 호불호가 극명한 도시라 했는데, 나는 극호, 쪽에 가깝다. 우중충한 날씨와 잿빛의 건물들은 어쩐지 영국의 그것과 닮아있다. (영국에 가본 적은 없다.) 또 어느 가게를 들어가든 커피가 전부 맛있다.(카페를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우리는 멜버른의 중심인 '플린더스' 역과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나온 거리, 또 유명한 거대 도서관에도 방문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쏘다니다 보니 어느새 작별의 시간. 나는 시드니로,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엄마 아빠 이모들과 한 번씩 껴안고 작별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고, 어쩐지 다섯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은 캐리어를 애써 잡아 끈다. 이 글의 마지막을 쓰고 싶지 않을 만큼 그때의 순간은 슬프다. 부족한 글 솜씨이기에 나의 마음을 백 프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번 여행은 우리 조금 더 길게, 오래, 여유롭게 해요.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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