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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Feb 27. 2020

산 넘어 산맥을 사는 사람의 삶

1. 김지윤이여, 김지윤에게 왜 이런 시련을.

 




내 이름은 김지윤, 23살이었죠.


십 대의 마지막 겨울, 꽤나 망친 수능 덕에 원하고 원했던 곳들 전부 락해버렸다. 싹 다 떨어졌으면 재수라도 하려 했건만 하향 지원했던 학교 하나에 덜컥 붙어버렸다. 과수원을 끼고 저수지를 따라 꼬박 1시간 반을 달려야만 나오는 그 학교에, 정리벽이 있는 도시 소녀의 마음이 동할 리 없다. 결국 적응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아니 잡을 생각 조차 하지 않은 채 1년을 학교 도서관에 처박혀 살다 학자금 대출금만 등에 업고 휴학 신청을 때려버렸다.


학교 문을 걷어차고 나와 거진 이년 가까이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며 모은 돈은 단 돈 천만 원, 언제고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맥북 에어를 지르고 나니 통장에는 찍힌 금액은 800만 원. 나는 이 800만 원을 당장에 현금으로 뽑아 남들 다 가는 호주로, 남들 다 하는 워킹 홀리 데이 코스를 밟게 된다.


누구나 호주! 하면 떠오르는 도시가 있겠으나, 쉬운 삶도 어렵게 사는 23살의 소녀가 대도시 시드니를 선택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시드니를 내치고 선택한 브리즈번에 눈곱만큼의 연고가 있느냐고? 아니 전혀! 세계 곳곳을 누벼온 나의 아빠조차 호주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국가라 했겠다.




아마도 내가 여전히 호주에 있는 이유.


브리즈번에서 나는 하루에 한 바가지씩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외로워서였다. (하하;) 한국인 머리카락 한 톨조차 보이지 않는 곳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하여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에 살며 나는 매일 밤 찌랭이처럼 질질 짜 댔다.


영수증 줄까?라고 물어보는 직원에게 예쓰, 노 조차 하지 못해 면박을 당한 적도 있었고, 햄버거가 먹고 싶었는데 시킬 줄을 몰라 매장 안까지 들어갔다 다시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집에 와서 두배로 울었다. 결단코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이 너무나 가엽고 쓸쓸하고 서글펐고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내일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워홀에 실패하고 돌아서는 참담한 뒷모습을 쓸데없는 나의 자존심 새끼가 용납해 주지 않았다.

 


사무치게 외로웠던 나는 결국 쓸쓸함에 패배하여 시드니로의 지역 이동을 감행했다. 이럴 거면 왜 브리즈번에서 온갖 고생을 다 했는가? 김지윤은 대체 김지윤에게 왜 그러는가? 서른이 된 나는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시드니에 도착한 날은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나는 빠르게 집을 구해야만했고, 밤마다 도박을 하러 나가는 늙은 조선족 부부와 수상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와이파이 조차 잡히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나는 며칠 새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방광염에 걸리고만다.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면 한번쯤 의심을 하자' 가 그 의 교훈이지만 여전히 10원이라도 더 싸면 눈이 팽팽 돌아가는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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