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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니맨 Apr 28. 2020

괜찮다면 거짓말

호기로웠던 퇴사자의 현재 상황


괜찮 다면 거짓말이다

퇴사한 지 어느새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8주쯤 된 것 같은데 정말이지 시간이라는 단어는 별것 아닌 것 같다가도 쌓이고 쌓여 세월이라는 단어가 되었을 때 날 섬뜩하게 만든다. 8개월 전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고 언제나 그랬듯이 큰 걱정 없이 호기롭게 퇴사를 결심했다. 




상처와 흉터


6개월이었다.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반년이라는 치유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여느 때의 퇴사와 차원이 달랐던 상처를 품고 나와야 했기에 혼란스러웠던 지난 직장에서의 기억을 삭제하고 회복하는데 그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만큼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 했었고 잘 해냈었고 그랬기에 지금 돌아보면 내 욕심도 의욕도 조금은 과했다. 


쉬는 기간 동안 여행도 다니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서 영상 편집자의 고충도 느껴보며 새로운 일들과 씨름하느라 나름 괜찮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었던 사람들은 잊을만하면 이따금씩 내 기억 속에 나타나 내 밤잠을 빼앗아 갔고 멀리하고 있던 소주잔을 다시 꺼내 들게 만들었다. 


잘 아물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고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에 하는 수 없이 상처부위를 확인해야 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 상처는 결국 흉터로 남을 거라는 걸.




복병의 등장


이직 경험이 많았던 나였기에 중간중간 재충전의 시간을 많이 가져 보았지만 보통 길어도 3개월이면 다시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야 하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여유로울 수 있었다. 오래 쉬다 보면 자존감을 잘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쉬면서 동시에 꾸준히 창작 작업을 해 나갔고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마다 찾아오는 실망감을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겨낼 여유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포기했던 미국 취업을 다시 천천히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다고 예상했지만 다행히 관련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을 덮치기 전까지는..


2월경 코로나는 중국과 한국을 혼란스럽게 했고 곧 이어서 유럽을 덮쳤다. 그때 까지만 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코로나의 행적을 예의 주시했고 설마 설마 하며 미국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그 모습을 뉴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안 좋은 느낌이 자리 잡아갔다. 급기야 미국 비자를 발급하는 국내 영사관의 업무는 중단되었고 해외 취업 비자는커녕 미국 내 일하던 사람들의 자리마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계획대로 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6개월과 8개월의 차이

결국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나의 미래는 갑자기 붕 떠버렸다. 이전에도 이러한 변수에는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이러한 기습적인 복병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세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다른 회사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내 나이와 경력은 어느새 무섭게 차 오르고 있었고 좁은 음악 산업 안에서 나에게 맞는 자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예상했던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이 지나자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마지노선을 넘어서며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고 조금은 막막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솔직히 괜찮다면 거짓말이다. 지금은 전혀 괜찮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비록 잠시 멈춰 섰지만 다리가 부러진 것은 아니다. 유튜브 채널명을 '이직왕 떠돌이'라고 지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계획하던 세계 여행도 기약 없이 미뤄야 하는 등 방 안에 처박혀 있어야 할 시간이 길어졌지만 그것은 단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방향이 조금 달라진 것뿐이다. 


다행히 앞으로 나아갈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이 태풍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위기 뒤에 기회'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내가 가장 즐기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숨 고르기가 끝나면 다시 자유롭게 필드 위를 뛰어다닐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그것에 의심이 생기는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기에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이미 또 한 번 바닥을 쳤고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좋아질 것만 남았고 그렇기에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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