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어서 떠나려고요'
'갔다와서 뭐하려고?'
'한창 열심히 해야 할 나이에 왜 그래?'
'돈 좀 많이 모았나보지?'
'그냥 한 번씩 휴가내서 여행 갔다오고 그러면 되지 유별나게 왜 그래?'
'1-2달 있다가 금방 돌아올려 그러지?'
간혹 '부럽다', '멋지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기도 했으나 대다수는 염려와 우려, 걱정 섞인 말들이었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하고, 혼자 은밀히 티켓팅을 하고, 여행 준비물을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정말로 실제가 되어갔다. 치밀한(?) 준비 끝에 회사에 사직을 고하고, 주변에 하나씩 선전포고를 해나갔다. 그렇게 나는 염려와 우려와 걱정섞인 말들에 대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사실 누구든지 수긍할 수 있을만한 대답을 내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1
다시 모든 삶의 터전을 정리했다. 먼지 하나, 흔적 하나 남기지 않으려 노렸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2
겨우 35년밖에 살지 않았으면서 삶의 터전을 정리하기를 여러차례 했다. 그런데 이건 해도 해도 참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삿짐을 싸는 육체적 피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침으로 인해 발생하는 염치없음, 부모님에게 철이 없는 아들이 되야 하는 정신적 고충 등등. 이래저래 익숙해질 수가 없다.
갔다와서 뭐 할건지 진짜 1도 대책이 없다. 한창 열심히 해야 할 나이인지 사실 모르겠다. 만약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거라면 난 아직 그 나이에 걸맞는 사람이 되지 못한 거다. 돈, 개뿔도 없다. 개뿔도 없이 이렇게 다짜고짜 여행을 지르는 내 자신은 내가 봐도 참 어이없다. 한 번씩 휴가내서 여행 가는 거 사실 귀찮다. 21살 이후 15년 가까이 해외 한 번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귀찮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1-2달 여행하다 말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1-2달 이후의 일도 내겐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잘 모르겠어서'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