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마시는 사람이 포도주를 받으면 생기는 일
술이 잘 안 받는 체질이라 평소에 술을 안 마시는데, 뜬금없이 받은 포도주로 삼겹살을 더 맛있게 먹어보기로 했다. 나의 조금 특별한 시도를 지금부터 이야기해 볼 참이다.
1. 우선 냉동실에 잠자고 있던 삼겹살을 냉장실에 넣어 3 ~ 4시간 정도 해동한 후 유리그릇에 잘 펼쳐 담는다.
2. 고기가 잠길 만큼 포도주를 먼저 부운 후, 추가로 올리브오일을 밥수저 기준으로 2 수저 넣는다. 랩을 씌워 뚜껑을 덮고 확실하게 밀폐가 된 상태로 냉장실에 넣어 12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만약에 12시간 숙성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면 최소 4시간 이상 숙성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3. 고기를 굽기 전에 집게로 포개어진 고기를 한 번에 싹 움켜잡고 한 번씩 뒤집어 준다. 아래쪽 고기가 위로 오도록 말이다. 위쪽에 떠 있는 올리브 오일이 골고루 잘 스며들게 하는 마지막 섬세한 작업이다.
4. 고기를 구울 때는 팬을 강불에 달궈서 열이 올라오면 불을 중으로 줄인다. 그 상태에서 고기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서 살짝 찌듯이 촉촉하게 구워준다.
5. 다 구워진 고기를 접시에 차곡차곡 예쁘게 담아내고 그 위에 로즈마리도 뿌려준다. 완성이다!
이렇게 고기를 찌듯이 구우면 약간 수육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센 불에 바짝 구운 고기랑은 맛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센 불에 바짝 구운 고기 식감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기를 그렇게 구웠다면 와인향은 다 날아가고 핑크빛을 품은 삼겹살보다는 그냥 센 불에 구운 삼겹살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이 음식의 맛을 묘사하자면, 와인의 산미가 고기의 느끼함을 확실하게 잡아줬다. 식감은 너무 질기지도 퍽퍽하지도 않은 부드럽지만 아주 살짝 쫄깃한 그런 느낌이었다. 아참, 그리고 촉촉함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이 촉촉함의 비결은 바로 뚜껑의 마법 아니겠는가. 강불에 구운 고기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촉촉함과 살아있는 포도주 향!
고기를 씹었을 때 느낀 포도주향을 묘사하자면, 고기에 포도주의 붉은색이 은은하게 살짝 베어 들어 핑크빛을 품고 있는 만큼 고기를 씹을 때 포도주향이 끝맛에 살짝 나면서 그 여운을 살포시 남기는 느낌이었다. '이리 와서 한 점 더 먹어보렴'하고 손짓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내가 만들어 본 음식 중에 아마 가장 고급진 맛을 가진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