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계속)
철학자는 인정 욕구가 얼마나 본인과 주변 관계를 불행하게 만드는지 콕 짚는다. 종종 이는 수직적이고 불안한 인간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부모는 아이에게 칭찬을 하거나 야단을 치면서 그 인정 욕구를 건드린다는 것. (그래서 말을 듣게 한다는 것) '아 다음에도 이렇게 (안)하면 인정받겠구나!'
과제의 분리와 수평 관계를 전제로 하지. 공부는 아이의 과제라는 것을 이해한 상태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거지. 공부하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부를 잘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거라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그 불안하고 불행한 관계를 끊는 것은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관계를 수평적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오래된 이솝 우화에서 나그네가 외투를 스스로 벗게 한 것은 따스한 햇볕과 서서히 따뜻해지는 주변 온도였다. 있는 힘을 다해 숨을 들이마시고 일방적으로 불어댔던 바람은, 오히려 나그네가 더 옷깃을 여미게 했을 뿐.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은,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어서 각기 다른 열등 콤플렉스를 방패로 삼는다고 이전 글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럼 열등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인가? 파워 긍정러인가? 아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우리는 '나'라는 내용물이 담긴 그릇을 버릴 수도, 교환할 수도 없네. '나'에 대한 견해를 바꾸는 것.
일부러 적극적으로 자신을 긍정할 필요는 없네.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수용을 해야 하네.
자기긍정이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강하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걸세.
한편 자기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걸세.
철학자는 '자기수용'과 '자기긍정'은 다르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이번에는 운이 나빴던 것뿐이야. 진정한 나는 100점짜리야"라고 환경이나 콤플렉스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60점짜리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100점에 가까워지려면" 목표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근본적으로 이런 원인이 있어서 저런 결과가 있다는 인과론이 아닌, 오직 그 사람의 욕망을 위해서 그가 이건 코에 걸고 저건 귀에 걸었다는 목적론을 주장한다. 그동안 인과에 얽매여 살아온 사고방식과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이란 목적을 위해 사는 순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자기수용'도 남을 친구로 여기고 베풀 수 있는 '타인신뢰'도 가능해진다. 점점 행복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인과론을 벗어던지면 '인생 최대의 거짓말'을 마주하고 버릴 수 있게 된다. 내 목적과 바람에 어긋나는 결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남 탓, 환경 탓하는 것이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인생 최대의 거짓말'은 대체 무엇일까?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라네. 지금까지 '지금, 여기'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은 과거와 미래에만 빛을 비춰왔어. 자신의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찰나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던 거야. 인생의 거짓말에 기대지 않고 이 찰나를 진지하게 살아갈 '용기'.
그렇다. 원인과 결과를 벗어던지면, 현재는 더 이상 과거의 산물이 아니고, 미래는 더 이상 현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과거를 후회하고 '있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그 순간, 지금 여기 살아있는 찰나는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정말 커다란 거짓말이다.
물론 그릇된 인정 욕구 앞에서 인과론을 핑계 삼아왔던 생활방식과 사회를 벗어나서 정면으로 '지금, 여기'를 마주하고 살아내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용기가 필요하다. 오히려 더더욱 인정을 받지 못하고 미움받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하다고 했고,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끝이 났다. 둘 다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바라보는 세계와 내가 속한 인간관계는 나의 목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다. 나만 바뀌어도 충분한 것이다.
혹시 '인생 최대의 거짓말'에 기대어 잠깐의 위안을 위해 관성적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북리뷰를 꺼내 보아야겠다.
져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