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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Oct 05. 2021

'느린 과학'이 필요한 때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홍성욱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장

[편집자 주] 이번엔 서울대 홍성욱 교수다. 홍 교수는 일찍부터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천착하고 결과를 다양한 경로로 발신해 왔다. 올 초에는 반경을 더 넓혀 국내에선 드문 본격 서평지인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창간해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서 근황을 물어봤다.


-코로나가 2년이 다 돼 갑니다. 근황을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코로나 전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강의 준비하고, 논문이나 책을 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정년이 5년 남았다 보니 남은 시간 동안에 강의하고 학생 지도하는 걸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듭니다.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서 출범한 지 9개월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반응이나 현재 상황은 어떤지요? 그간 성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평하시는지요?


출판계와 독서 시장에 폭풍을 불러오지는 않았지만 작은 파도는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출판사나 출판 매체의 의뢰를 받아서 쓰는 서평이 아니라 우리가 골라서 칭찬할 책은 칭찬하고 비판할 책은 비판함으로써 책에 대한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어보겠다는 것이 우리의 의도였고, 아직 이런 초심이 꾸준히 유지되었다고 봅니다.


-출간해서 진행해 오시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나 뜻밖의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촘촘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사회이고, 따라서 국내 저자들의 책에 대한 진솔한 서평을 쓸 수 있는 평자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기 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얘기를 하면, 그것을 마치 나에 대해서 공격을 한다고 받아들이거든요.      


-준비하고 계신 기획이나 앞으로 있을 어떤 변화가 있다면?     


지금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와 함께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서평을 온라인에 올리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으로 이를 구축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편집위원을 더 확충하는 문제도 꾸준히 논의하고 있습니다.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하셨고,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오래 생각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지금 기술 발전의 가속화와 테크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두고 우려와 함께 규제 움직임도 시작된 듯합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중요성에 비해 소홀히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을 지적하시겠습니까?     


Slow science. 느린 과학. 지금은 혁신의 속도를 빨리하는 것만을 고민하는 과거 20세기 과학기술 연구 패러다임에서 눈을 밖으로 돌려서 혁신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공생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 위기는 앞으로 다가올 진짜 위기에 비하면 예고편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까요.      


-일상에서는 스마트폰이나 디지털기기 중독의 심각성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평소 소셜미디어나 디지털기기에 대한 나름의 사용 수칙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소셜미디어에 대한 중독은 ‘관계에 대한 중독’입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남을 인정하고, 나보다 더 뛰어나 보이는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걸 나무라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고, 현실 세계에서 실제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많이 얘기하는 워크-라이프 밸런스(워라밸)처럼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상의 밸런스(현사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요즘 대학도 다양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고, 내부 노력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학 밖에서는 입시 이외 학내 상황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변화들이 있고,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요.. 20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교수들이 만나면 ”요즘 뭐 연구하세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요즘 가장 호기심이 가거나 궁금한 지적인 문제가 있다면?     


얼마 전에 세월호 침몰과 복원성 논쟁에 대해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면서 ‘재난 프레임’이란 개념을 착안했는데 (어떤 재난 사고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비정상적이고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보는가의 프레임), 이를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논쟁이나 광우병 논쟁 등의 다른 재난 사고의 사례에 좀 더 확장시켜보고 싶습니다.      


-오래 지켜온 습관이나 수칙, 모토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논문의 초고를 쓸 때 면도를 하지 않는다는 정도?      


-현재 집필 중이거나 계획 중인 책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부산대학교 현재환 교수와 <마스크 파노라마>(가제)라는 책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위드코로나 시대의 필수적인 인공물인 마스크를 비인간행위자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보려는 책이지요. 장기적으로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는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이르렀는가’라는 질문에 부분적으로 답을 하는 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좁혀서 말하자면, 기술에 초점을 맞추면서 1960~1980년대의 산업화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해보는 책입니다.      


-과학과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의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 3권 정도를 고르신다면?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브루노 라투르&스티브 울거의 <실험실 생활>, 그리고 해리 콜린스와 로버트 에번스의 <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

  

-분야를 막론하고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유도 간략히 곁들여 주셔도 좋습니다.) 


에두아드로 콘의 <숲은 생각한다>. 애니미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했던 책입니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인류세의 위기를 다른 관점에서, 좀 더 낙관적이면서 실천적인 관점에서 보게 한 책입니다.      


-생사를 불문하고 한 명의 저자/학자/기타 인물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혹은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1930~1940년대의 미국 벨연구소로 가서 연구 담당 부소장을 했던 머빈 켈리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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